[금주의 영화] 맨 오브 마스크·눈꺼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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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3   |  발행일 2018-04-13 제42면   |  수정 2018-04-13
하나 그리고 둘

맨 오브 마스크
전쟁의 상처로 쓴 가면…세상을 향한 사기극


20180413

놀랍게도 누구나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혹은 누구나 평화를 같은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조차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맨 오브 마스크’(감독 알베르 뒤퐁텔)의 모든 비극 또한 전쟁을 사랑하는 한 인물 ‘프라델’(로랑 라피트)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중 휴전 소식이 들리자 두 명의 병사를 정찰병으로 보낸 후 그들을 직접 살해함으로써 다시 전투를 도발한다. 초반부 묘사되는 참혹한 전투 신은 인간의 악한 본성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는지 경고하기에 충분하다. 역사 속의 폭군들처럼 프라델은 광기 어린 모습으로 총부리를 겨눈다. 그의 짐승 같은 폭력성은 전후 복구 사업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할 때도 드러난다. 프라델은 인명피해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살아남은) 서민들에게 심각한 재산 피해와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겼던 전쟁을 즐기고 이용했던 당대의 파렴치한 한 부류를 표상한다.


전쟁 일으킨후 전후 복구사업으로 막대한 이익
전쟁이 일어나도록 방치한 아버지 세대에 분노


한편, 그가 벌였던 잉여의 전투에서 두 명의 전우가 한 배를 탈 운명이 된다. ‘알베르’(알베르 뒤퐁텔)는 자신을 구해주다가 턱과 목소리를 잃은 ‘에두아르’(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를 전쟁이 끝난 후에도 헌신적으로 돌본다. 약혼녀도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기에, 그의 곁에는 자신만을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에두아르밖에 없다. 본래 부잣집 아들인 에두아르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혹독하게 대했던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대신 알베르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전사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가 천부적인 재능을 살려 만들기 시작한 마스크는 새로 얻은 이름처럼 에두아르의 진실을 감춰준다. 그는 턱뿐 아니라 얼굴 전체를 덮는 기발한 마스크들을 만들어 자신의 기분에 맞춰 바꿔 쓴다. 에두아르의 가면들은 이미 표면적으로 매장당한 존재로서 그의 신비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지난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초현실적인 차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에두아르의 감각적인 가면들은 그만큼 강렬하게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자신의 목소리를 대신할 소녀까지 친구이자 조수로 곁에 두게 된 에두아르는 전사자 기념비 공모에 걸린 거액을 횡령할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 반대하던 알베르도 마지못해 그 사기극에 동참한다. 주로 전쟁으로 이득을 취한 사람들을 공략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범죄는 프라델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무엇보다 이들의 일탈은 그들을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 살아가게 만든 장본인들, 즉 전쟁이 일어나도록 방치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분노에 기인한다. 과연 에두아르와 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이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결말 이후 전개되는 유럽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맨 오브 마스크’는 2013년 공쿠르상을 시작으로 많은 상을 거머쥔 원작소설 ‘오르부아르’(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우아함과 대담함을 충분히 살려낸 작품이다. 영화 또한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을 비롯한 5개 부문의 상을 휩쓴 바 있는 만큼 완성도가 높다. 연출과 주연을 함께 담당한 알베르 뒤퐁텔의 비상한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눈꺼풀
섬 노인의 망자를 위한 위로…세월호 진혼곡


20180413

오멸 감독의 영화는 따뜻하고 아름답다. 주제에 대한 진정성이 뜨겁게 다가오고, 그것이 그대로 스크린에 현현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무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진귀한 감독이다. 제주도에 살면서 ‘4·3항쟁’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기도 했던 그는 당연히 세월호의 아픔 또한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스태프들과 무인도에 들어가 ‘눈꺼풀’을 완성했다. 등장인물이 몇 안 되고, 대사가 거의 없고, 사건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영화는 풍부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에게 그저 집중해서 추모하라고 말한다. 너무도 끔찍한 사건 앞에 당장 할 말을 잃은 연출가의 침통한 감정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바닷가 떠내려 오는 트렁크·끊이지 않는 전화벨
아이들·교사가 떡 먹으러 왔다 대사, 참사 반추



영화 속 섬 노인의 하루는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삶을 잘 보여준다. 일렁이는 파도의 굴곡이 기막히게 표현된 바다를 배경으로 노인은 일을 하고, 먹고, 자는 일상을 반복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노인의 생활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가 직접 떡을 만들어 바다 절벽 사이에 놓는 행위다. 망자들을 위한 제사의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장면은 후반부 아이들과 교사가 이 섬에 떡 먹으러 왔다고 말하는 데서 더 투명해진다. 섬 해안으로 떠내려 오는 트렁크, 끊이지 않는 전화벨, 바다에서 들려오는 무서운 소리들, 돌탑을 쌓는 아이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세월호 참사 뉴스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등장인물은 몇 명 없어도 영화는 기고, 뛰고, 나는 크고 작은 곤충과 동물들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거나 사람들이 대개 혐오하는 동물들도 살아있음의 증표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영화 곳곳에 포착되어 있다. 이들의 반복되는 움직임은 영화가 한편으로 형상화하는 죽음이라는 테마와 대비를 이룬다. 한 장면, 한 장면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연출된 이미지와 사운드가 세월호 참사를 반추하는 영화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예상컨대 어떤 영화도 ‘눈꺼풀’만큼 잘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화로 망자들을 위로해왔던 오멸 감독의 영화에는 그만큼 흉내낼 수 없는 농도의 세련미와 감수성이 서려있다. 고요한 가운데 육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6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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