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알아가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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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3 07:46  |  수정 2018-04-13 07:46  |  발행일 2018-04-13 제16면
[문화산책] 알아가는 즐거움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배움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글을 쓰려거든 공부를 해야 한다.’ 두 말을 멋대로 합쳐 결론 내려 보자면, ‘배우는 기쁨을 즐기는 이라면 글을 써라’ 정도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작가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글을 몇 편 써봤다고 해서 쉽게 그 사람을 작가라 부를 수는 없다. 다만 어쭙잖은 솜씨로 대본을 몇 편 써본 경험으로 미루어 말해보자면, 글 쓰는 일은 우선 만만치 않은 자료조사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조금은 가볍게 생각할 수 있을 20~30분 정도의 짧은 대본을 쓰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예컨대 어떤 대본을 위해서는 각종 한약재의 이름이며 효과, 약재가 시장으로 나오기까지 취급되는 과정, 약재시장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어떤 대본을 위해서는 동해권에 대한 일제 침탈사부터 사라져간 동식물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어떤 대본을 위해서는 탈춤 전 과정의 대본이며 춤 구성을 달달 외우다시피 해야 한다. 이는 누가 억지로 시키는 일이 아니요, 하지 않고는 글 쓰는 사람 스스로 글을 써내려갈 수 없기에 하는 일이다. 알아야만, 할 말이 생긴다. 소재에 대한 튼실한 이해가 없다면 그를 바탕으로 심도 있는 주제 구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저 그럴듯한 성공 공식 코드만을 모아 구성되는, 볼 때는 재미있지만 보고 나면 무엇을 봤는지 기억조차 남지 않는 공허한 글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가까이 나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유명한 웹툰이나 드라마의 제작담만 들어보더라도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자료조사와 공부를 선행하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쓰며 ‘알아간다’는 것은 배경 지식 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욱 본질적으로는 나 자신, 내가 살아가는 세상,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대본을 써내려가기에 앞서 막연하게 자신을 사로잡는 화두 하나를 붙들고 도대체 왜 그 화두가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인지 치졸하리만큼 물고 늘어지다 보면, 무의식 아래로 밀어놓고 잊은 채 살아가던 무언가가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똑같은 대본을 10여년 만에 재창작해보려 꺼내본다면, 시대와 사람들의 변화를 사뭇 깨달을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와중에 티끌만큼씩 세상을 알아가는 즐거움,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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