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YES MAN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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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1   |  발행일 2018-04-11 제31면   |  수정 2018-04-11
[박재일 칼럼] YES MAN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몇 시간 뒤 대통령의 전화를 받긴 했지만, 알려진 대로 트럼프의 트위터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들었다는 말도 나왔다. 그의 경질 뉴스보다 ‘트위터 해고’가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감정을 잘 인내하고 절차를 중시하는 미국식 일의 방식에 비춰보면 분명 뭔가 있었다.

틸러슨은 트럼프의 충동적 정책 결정에 불만을 표출해 왔다. 특히 북한 문제를 놓고 유화적 대화를 시사한 그의 언행은 트럼프의 ‘그건 엉터리다’는 식의 강한 제지에 묵살당했다. 미 석유회사 엑슨모빌 회장이었던 그는 대외정책을 놓고 트럼프와 끊임없는 갈등을 빚은 것이 틀림없다.

해고 당일 기자회견을 녹화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비상식적 해고 통보에 그는 숨이 가쁜 듯했고, 불편한 심기는 화면으로 그대로 노출됐다. ‘신의 가호를’이란 말을 끝으로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10여일 뒤 그는 국무부 직원들에게 ‘워싱턴은 비열하다’ ‘스스로를 소중히 잘 지켜라’는 말을 남기며 박수를 받고 청사를 떠났다. 지난달 22일이었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민주당원이면서도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하는 핵심 참모가 됐다. 골드만 삭스 CEO였던 그는 자유무역주의자다. 트럼프가 중국을 위시해 러시아 등지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대대적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반대하고 나섰다.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게리 콘은 “내가 사퇴할 수도 있다”고 대통령에게 맞섰다.

그는 앞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단 시위로 유혈사태가 난 상황에서, 트럼프가 백인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잘못된 것이라고 자신의 보스인 대통령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해임됐다. 지난달 6일이다. 미 언론은 트럼프가 해고한 무려 34번째 행정부 고위관료라고 전했다.

직전 및 그 직전 두 한국 대통령이 구속됐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일국의 대통령들이 이렇게 구속된 사례가 세계적으로도 있을까 싶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강요, 직권남용 등 18개 죄목으로 기소됐고, 법원은 24년형을 선고했다. 이 전 대통령도 비슷한 명목의 16개 죄목으로 구속기소됐다. ‘명백한 정치보복, 역사가 판단할 것’이란 반론을 뒤로하고, 전대미문의 대통령 옥사(獄事)를 보면 하나의 의문이 있다. 대통령제라고 해서 대통령 한 사람만이 모든 일을 처리하지는 않을 텐데, 구름같이 둘러싼 장차관, 참모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틸러슨이나 게리 콘의 해임에는 트럼프의 변덕이나 북한 핵처럼 국면전환에 직면해 새로운 진용 포진이란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내가 아랫사람 참모라 할지라도 윗사람 대통령에게 나의 철학과 정책적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치문화가 깊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종종 해외언론을 통해 ‘대통령과 나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장관이나 측근 참모가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뉴스를 접한다. 그런 상황이 우리에겐 생경하다.

트럼프에 대한 참모들의 반기는 역설적이게도 트럼프를 지켜 주는 장치일 수 있다. 통제불능의 대통령 권한을 제어하고 또 대통령 스스로 정책적 선택폭을 넓히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에도 그런 비슷한 참모가 있는 듯했지만, 청와대의 질책성 신호에 꼬리를 내린 장면들이 떠오른다. 원전폐기에서 최저임금, 아랍에미리트와의 돌출적 상황, 남북관계에 이르기까지 논란적 이슈를 몰고 온 문재인 정권에서도 유사한 스냅들이 언뜻언뜻 비친다.

예스맨은 스스로 자리는 보전할지 몰라도 조직에는 득이 되기 어렵다. 세월호가 침몰한다면 문을 부숴서라도 대통령에게 알리고 또 보고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말로의 저간에는 어쩌면 ‘예스맨 정치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틸러슨이나 콘과는 달리 잘리면 갈 데가 없는 신세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면 우리는 너무 초라해진다. 나라든 조그만 조직이든 ‘예스맨’들만 득실거린다면 민주적 결실을 얻기 어렵다.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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