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신들은 왜 인간을 3번씩이나 만들었을까!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4-09   |  발행일 2018-04-09 제30면   |  수정 2018-04-09
잉카문명의 인간탄생 신화
뉴질랜드 마오리족 신화는
유한하면서 자기모순적인
생과 사가 함께하는 존재인
본래의 참인간을 말해준다
[아침을 열며] 신들은 왜 인간을 3번씩이나 만들었을까!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신화는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그렇다고 공허한 것만은 아니다.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다. 신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상정토록 한다. 하늘에는 천둥번개가 요란했고 땅에는 자신들만이 떨고 있었다. 대자연은 너무 무섭기만 했고, 자신들은 너무 초라하기만 했다. 도대체 자연이란 무엇이고 사람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도 자연보다는 사람이 우선인 것은 사람 없이는 자연도 사회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들은 사람을 먼저 ‘단순’하고 ‘위대’하게 만들고자 했다.

남미 잉카인의 신들은 인간을 3번씩이나 새로 만들었다. 먼저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으나 너무 미련하고 둔감하여 갈라지고 찢어지면서도 ‘여당’이라고 세상민심을 바로 듣지 않았다. 신들은 실망하여 뭉개버리고 두 번째로 더 멋있는 인간을 나무로 깎아 정성껏 잘 만들었다. 아주 날씬하고 매끈하며 눈치도 빨라 촛불들의 큰 재판까지도 거뜬히 해치웠다. 그러나 너무나 거칠고 딱딱하여 때로는 막무가내였다. 적폐청산이라 하여 적폐지수로 수사권 조정을 들고 나왔는가 하면, 장치도 없는 개헌까지를 서슴지 않으려고 한다.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 하여 신들은 나무인간을 부셔버리기 시작했다. 이를 알고 약삭빠른 일부는 숲 속으로 도망쳐 가족을 이루었고, 결국 원숭이 부족으로 숲에서 살게 됐다. 이를 보고 있던 신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세 번째로 진흙도, 나무도 아닌 반죽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반죽인간은 진흙인간처럼 미련하지도 않았고 나무인간처럼 거칠지도 않았다. 부드러우면서도 영리하여 사람들을 설득도 잘해 나갔다. 그런데 한참을 들어다보니 참으로 교활하게 금융전문인을 밀어제치고 운동권의 시민경력자라 하여 금감원의 수장자리를 차지케 하는가 하면, 낙방한 의원들을 자기네 편이라 하여 이권의 자리를 골고루 챙겨주고 있었다. 신들은 3번씩이나 인간을 새로 만들었지만 ‘참 모습의 인간’은 없었다. 이를 알고도 신들은 이제 너무 피곤하고 세상이 귀찮아 그네들 멋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래도 그냥 뒀다간 큰일 날 것 같아 두뇌에다 제동을 걸어 안개 속처럼 불투명하게 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신화는 우리에게 인간의 참모습을 아주 단순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수호신 티키(사람)를 손가락 3개만, 즉 검지와 중지, 그리고 무명지만 가지고 있는 상으로 조각했다. 검지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을 의미하고, 중지는 역경 가운데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삶’을 의미하며, 그리고 무명지는 언젠가는 이승을 떠나야 한다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생과 삶, 그리고 사 이외 무엇을 더 표현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티키는 자신의 품에다 생과 사를 다 함께 가지고 있어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은 용납하지 않았다. 삶에는 생과 사의 연속성만이 있고, 연속성의 양극에는 생과 사가 자리하고 있다. 생은 권력탄생의 시작이고, 사는 그 종말의 바탕이다. 이 양극 사이에서 삶은 쉼 없이 출렁인다. 출렁이는 인간의 삶속에서 희비가 교차한다. 희비의 교차는 권력도 혁명도 용납하지 않는다.

생과 사는 둘이지만 부활절의 삶은 그 자체로서 하나다. 정오의 해는 나와 내 그림자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보여준다. 중지가 긴 것은 한낮의 해 때문이고, 검지와 무명지가 짧은 것은 한밤의 달 때문이다. 달은 어두우나 해는 밝다. 밝은 해는 한낮을 만끽하나 어두운 밤은 한밤을 지새운다. 한낮은 한밤으로 가는 길목이고, 한밤은 한낮으로 가는 길목이다. 길고 긴 인생길의 낮과 밤은 그네들의 ‘혁명’ 때문에 존재하지 않고 우리네의 ‘삶’ 때문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생길 마디마디의 새싹은 언제나 돋는다. 현자는 우리에게 오늘에서 내일을 바라보지 말고 내일에서 오늘을 바라보라고 권면한다. 그것이 참 인생길이기 때문이다. 잉카문명의 신화는 세상천지의 권력을 가진다 해도 그 자신이 이미 졸권(猝權)의 유한 존재이고 자기모순의 존재임을 자각토록 하며, 마오리족의 신화는 생과 사가 다 함께 하는 본래의 참 인간 삶이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