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세 여자와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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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7   |  발행일 2018-04-07 제23면   |  수정 2018-04-07
[토요단상] 세 여자와 간디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요즈음 읽은 조선희의 ‘세 여자’(한겨레출판, 2017)와 제프리 애시의 ‘간디 평전’(안규남 역, 실천문학사, 2004), 김삼웅의 ‘백범 김구 평전’(시대의창, 2014)을 통해 세상을 돌아본다.

‘세 여자’는 흡인력이 강해 단숨에 읽었는데, 바로 그런 만큼 내용을 여유롭게 음미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사회운동을 하며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세 인물의 인생이 역사와 이데올로기, 사랑의 사건을 보이며 매끈하게 전개되어 강물의 흐름을 빨리 감기를 통해 보는 듯한 박진감이 있다. 하지만 중심인물에 대한 작가의 거리 두기가 약화되어 있어서 나 또한 거리를 두고 상황을 음미하기가 어려웠다. 서사적 거리에 의한 깊이는 오직 프롤로그에서만 확인되는 셈인데, 이는 작가가 세 주인공을 조명하면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앞세우고 모든 주요 등장인물을 평전을 쓰듯이 그린 까닭으로 보인다. 역사에서 잊혀있던 여성을 복원한다는 사명감이 앞서면서, 문제를 탐구하는 소설이라기보다는 평가가 깔려 있는 평전적인 성격이 강화된 경우라 하겠다.

이러한 평전적인 성격이 다소 부정적으로 두드러진 경우가 ‘백범 김구 평전’이다. 여기서 그려진 김구는 어떠한 고뇌도 반성도 보이지 않는 그저 완결된 인물인데, 이는 저자가 애초부터 김구를 숭배의 대상으로 세워 놓은 까닭이다. 날것 그대로의 사료가 제시되는 경우도 탐구의 부재를 증명하는 듯해 안타깝다.

반면 ‘간디 평전’은 훌륭한 평전이란 어떤 것인지를, 평전이 잘 쓰이면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만하다. 제프리 애시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소설을 읽듯이 자연스럽게 인물의 내면에까지 빠져들게 하는 한편, 간디가 보이는 행적을 주변 상황에 비추어 제시함으로써 그의 성과의 높고 낮음을 함께 깨닫게 해 준다. 이렇게 간디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구현해 냄으로써 그의 인간다움 덕분에 그의 위대함이 더 위대해 보이게 하고 있다. 실로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첫 고비를 넘어서면 손을 뗄 수 없게 되는 것은, 간디라는 거인의 세계를 우리가 공유하게 되는 드문 경험을 맛보는 까닭이리라. 이러한 경험이 가능해지는 것은 간디의 삶과 사상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재구성해 낸 저자의 공력 덕분이다.

이러한 태도, 자신이 서술하는 인물이나 인간사가 저자 개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듯이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확보해 내는 자세는, 대체로 장편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며 훌륭한 소설과 그렇지 못한 것들을 구분짓는 평가 기준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서 앞서 말한 독서 경험을 되돌아보면 다소 착잡한 감이 없지 않다. ‘간디 평전’에서 훌륭한 소설의 효과를 맛본 반면 정작 장편소설인 ‘세 여자’에서는 2류 평전적인 특징을 엿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 여자’의 그러한 면모가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라는 그냥 잊혀서는 안 될 역사적인 인물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잊혀왔다는 절실한 문제의식의 결과이리라는 생각이 착잡함을 낳는다. 지난 100여년의 현대사나 근래의 미투 운동에 비추어 그러한 여성주의적인 문제의식이 성급한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시야를 넓혀 보면,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하는 이러한 조급함이 이들 세 여성의 소설화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다. 노동시간이나 최저임금, 대학입시 제도, 고등학교 문·이과 구분, 헌법 개정, 4·3의 올바른 평가 등 여러 문제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오랜 기간 객관적으로 성찰하면서 사태를 재구성해 내는 긴 호흡의 정신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나의 착잡함은 한층 커진다. 소설다운(!) 소설이 갈수록 줄고 ‘간디 평전’같은 국내 저작을 찾기 어려운 것은 이런 사회 상황의 한 지표일 뿐이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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