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기담’이어 11년 만에 ‘곤지암’으로 돌아온 정범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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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6   |  발행일 2018-04-06 제43면   |  수정 2018-04-06
실시간 공포 생중계…유튜브 세대 열광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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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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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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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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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2012년 10월31일 CNN이 보도한 ‘세계에서 소름 돋는 7곳의 장소(7 of the freakiest places on the planet)’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봤던 기억이 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놀이공원, 체코 세들렉 납골당, 일본 아호키가하라, 토고 동물부적 시장, 멕시코 인형의 섬, 일본 군함도와 함께 한국의 곤지암 정신병원이 명단에 올라와있었다. 이 정신병원의 정식 명칭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남양신경정신병원으로 1996년 7월 폐업한 이래 여러 흉흉한 괴담이 퍼져 나가며 CNN뿐 아니라 국내 언론에서도 충북 제천 늘봄가든, 영덕 흉가와 함께 ‘대한민국 3대 흉가’로 이미 소개된 바 있다. 이곳이 최근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바로 정범식 감독의 ‘곤지암’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와 중앙대 대학원 영화학과에서 공부한 정범식 감독은 대학 동기인 영화사 도로시 장소정 대표의 제안으로 데뷔작 ‘기담’을 만들게 된다. ‘기담’은 원래 ‘병원기담’이라는 제목으로 형제감독 박진성, 박진석이 맡기로 했으나 캐스팅까지 마친 상태에서 제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던 작품이었다. 정 감독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마치고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로 활동했던 자신의 사촌동생인 정식 감독과 공동 연출로 1942년 경성의 한 신식병원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의 기이한 이야기를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엮어냈다. (정식 감독은 이후 배우 김주혁의 유작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만들기도 했다).


2007년 ‘기담’무리하지 않은 연출
미장센 돋보이는 공포영화로 극찬
전래동화 현대적 해석한 ‘해와 달’
원초적 공포 더해 메시지까지 녹여

젊은 관객층 73% ‘곤지암’흥행가도
실존의 장소 공포감 사실적인 표현
SNS중심 홍보 10∼20代 호기심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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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식 감독

‘기담’은 지금 보아도 놀라운 영화다. 새로운 시도와 무리하지 않은 연출에 안정적인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2007년 개봉 당시 평단에서 놀라운 데뷔작으로 아름다운 미장센이 돋보이는 공포영화라는 극찬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후 정범식 감독은 ‘여고괴담’에 이어 한국형 프랜차이즈 공포영화의 명맥을 잇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와 ‘무서운 이야기 2’에서 각각 ‘해와 달’과 ‘탈출’을 만들었다. 전래동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해와 달’은 귀신의 등장이 주는 원초적인 공포에 더해 사회적 메시지까지 녹여냈고, ‘탈출’ 역시 적절히 배합된 긴장감과 서스펜스 위에 코믹까지 얹어 버무려내며 공포라는 장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줄 아는 감독임을 증명한 바 있다. 그러나 배우 고현정이 주연을 맡은 ‘미쓰GO’의 시나리오를 쓰거나 배우 조여정과 클라라를 기용해 ‘워킹걸’을 연출하면서 ‘기담’ 같은 공포영화를 기대하는 영화 팬들을 너무 오래도록 기다리게 했다.

기다림을 단숨에 해소하는 ‘곤지암’은 실존하는 장소가 주는 위압적인 공포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실시간 생중계’라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 사실 그간 공포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극 중 인물들에게 의아해하는 이유가 왜 굳이 괴소문이 도는 폐허나 폐가에 일부러 찾아가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이를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개인방송 생중계’라는 새로운 문화를 가져와 설득력을 확보한다. 이 과정으로 짜릿한 공포 체험도 즐기고 실시간 생중계로 막대한 광고비까지 챙기는 극 중 ‘호러타임즈’ 멤버들의 모습은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젊은 관객 층의 심리적 지지 또한 이끌어낸다. 정 감독은 전문 촬영감독 대신 여섯 명의 배우에게 고프로나 페이스캠 같은 카메라를 장착시킨 뒤 직접 촬영하게 하는 동시에 촬영한 카메라가 최대 19대에 육박하고 스크린 좌우 공간까지 활용하는 스크린X 기술을 염두에 둔 작업까지 병행해 관객들이 극장에서 다양한 구도로 배우들과 함께 공포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그간 한국 공포영화에서 거의 매번 보아왔던 억울한 귀신들의 한이나 슬픔, 복수같이 공포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나 신파적인 드라마는 배제하고 오직 공포 자체에만 집중해 관객들을 압도한다.

정 감독 역시 한 인터뷰에서 “상업적인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캐릭터의 관계에서 오는 사연을 빼자는 것이었다. 언젠가 먹방 생방송을 본 적 있는데 시청자들이 ‘먹는 것’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체험형’ 내러티브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공포영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쉽게 말해 부수적인 사연을 이야기 안에서 모두 지워나간 것이다. 공간 자체를 캐릭터로 두고 마치 예능 프로그램을 보듯 캐릭터들의 리액션을 관객이 지켜보게 하는 것이 ‘곤지암’을 보게 만드는 재미 요소라고 생각했다. 현대 공포영화들이 과시하듯 보여주는 선혈이 낭자한 장면들이나 음향효과 말고 히치콕 스타일의 고전 공포영화들이 보여줬던 서스펜스 조율 방식처럼 컷의 길이를 중요하게 편집하고 소리를 아끼고 아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요즘 공포영화들이 잘 구사하지 않는 내러티브 방식과 고전영화들의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식을 합치면 어떤 영화가 나올지를 고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결과 영화는 지난달 28일 개봉 직후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일주일 만에 150만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첫 주말 3일간만 98만명을 동원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관객층도 10대와 20대가 전체 관객 가운데 72.7%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출연진이 관객들에겐 낯선 신인에 가까운 순 제작비 11억원의 저예산 영화가 거둬들인 성과는 단연 빛난다. 여기에 ‘곤지암’의 장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타깃층을 정해 홍보에 나선 방식도 적중했다. 처음부터 10대와 20대 관객에 맞춰 SNS를 중심으로 홍보하며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공포영화를 만들고 즐기는 감독이자 관객의 입장에서, 왜 한국에서는 유독 제대로 된 공포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대한 답을 ‘곤지암’이 준 것이다. 제대로 된 기획과 거기에 맞는 마케팅. 몇 년 동안 공포영화 기획안을 멀리했을 충무로 기획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었겠다. 이제 ‘제대로 만든’ 한국 공포영화를 더 많이 볼 수 있으려나.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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