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슬랙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바람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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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6   |  발행일 2018-04-06 제42면   |  수정 2018-04-06
하나 그리고 둘

슬랙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연쇄 실종사건…귀족·어부가족 통해 희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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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랙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이하 슬랙베이)은 ‘휴머니티’(1999), ‘플랑드르’(2006) 등으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바 있는 브루노 뒤몽 감독의 작품이다. 자연주의적 미학이 두드러졌던 전작들의 무게감 때문에 그가 코미디에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슬랙베이’는 69회 칸영화제에 초청될 당시부터 시네필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기대에 걸맞게 ‘슬랙베이’에는 슬랩스틱 코미디조차 브루노 뒤몽의 스타일대로 우아하고 절도있게 구현되어 있다. 뚱뚱한 몸 때문에 언덕을 굴러서 내려가는 경찰관, 구부정한 등에 거들먹거리며 걷는 앙드레(파브리스 루치니), 천박하게 웃어대는 오드(줄리엣 비노쉬) 등의 캐릭터는 오랜만에 ‘자크 타티’의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두 가족의 치부·러브스토리까지 결합한 풍자극
줄리엣 비노쉬, 히스테릭한 중년여성 완벽 연기



1910년 여름, 슬랙베이에서 관광객들이 사라지는 연쇄 실종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이곳에 사는 가난한 어부 ‘뷰포트’ 가족과 이곳을 잠시 방문한 귀족 ‘페테겜’ 가문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사회적·경제적 계급차뿐 아니라 두 가족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뷰포트 가족은 조용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페테겜 가족은 수다스럽고 과장이 심하며 우스꽝스럽다. 브루노 뒤몽 감독은 뷰포트 가족에는 대부분 아마추어 연기자들을, 페테겜 가족에는 전문 연기자들을 기용함으로써 그 대비를 더욱 확실히 한다. 금기된 것들을 행한다는 점에서 두 가족은 모두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완전히 다르다. 어부 가족의 분노는 외부지향적이고, 귀족 가족의 욕망은 안으로 침잠해 있다. 영화는 각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한편 실종 사건과 러브 스토리를 결합하는데, 뷰포트 집안의 아들 마루트(브랜든 라빌)와 오드의 아이인 빌리(라프)가 사랑에 빠졌다가 마루트가 빌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계급 간 투쟁이 일어났던 20세기 초의 시대상이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까미유 끌로델’(2013)에서 브루노 뒤몽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세계적 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많은 등장인물이 들락거리는 이 영화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그녀는 기존의 고상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감춘 채 경망스럽고 히스테릭한 중년 여성을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적당한 거리감을 통해 심각한 상황을 희화화해낸 고급스러운 풍자극이다. (장르: 미스터리, 블랙코미디,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22분)


바람의 색
도플갱어·다중인격…마술 부리는 듯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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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색’(감독 곽재용)은 독특한 소재의 감각적인 멜로드라마다. 지난 3월 개봉해 약 235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가 안정적이고 고전적인 로맨스물이라면 ‘바람의 색’은 꽤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다. ‘엽기적인 그녀’(2001)와 ‘클래식’(2003)을 연출했던 곽재용 감독의 작품이기에 더욱 놀랍다. 그는 이 영화에서 처음 멜로드라마의 거장이라는 찬사를 받던 당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소재에 접근한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마술을 부리 듯 대담하고 몽환적인 연출은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솜씨일까? 스릴러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다중인격’이나 ‘도플갱어’를 로맨스에 접목시킨 부분부터 신선하다.


‘엽기적인 그녀’ 곽재용감독 몽환적 연출 로맨스
어딘가 존재하는 또다른 나와의 갈등과 사랑 찾기


‘아야’(후지이 다케미)는 연인이자 천재 마술사로 주목받던 ‘류’(후루카와 유우키)가 수중 탈출 마술쇼 중 사고로 탈출에 실패하자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한편 도쿄에 살던 ‘료’는 연인 ‘유리’가 갑자기 떠나버린 후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TV를 통해 자신과 똑같이 생겼던 류의 존재를 알게 되고 홋카이도로 간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난 유리, 아니 아야는 료를 류라 생각하고, 이별의 아픔을 공유한 두 사람은 익숙한 듯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마술 같은 사랑’은 ‘바람의 색’의 주요 테마로, 류의 자취를 따라 마술사로 빠르게 성장해 나가는 료의 모습을 통해 종종 구체적으로 시각화된다. 자유자재로 사물을 움직이며 있던 것을 사라지게도 하고 복제해내기도 하는 료의 마술은 사실 눈속임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그 놀라운 순간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믿고 싶어 한다. 진짜 나의 모습, 진짜 사랑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유리는 일본 어딘가에 자신의 도플갱어가 있다는 말을 남긴 뒤 사라졌고, 료는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류의 이야기에 묘하게 이끌린다. 또한 아야에게 류로 오인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 아야와 료가 거리를 걸어오면서 마틸다와 레옹의 모습으로 바뀌는 장면은 다소 당황스러우면서도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뮤직비디오처럼 빠르고 화려하게 편집된 스타일이 이런 직접적인 인용의 어색함을 덜어준다. 달달한 연애담보다는 인물들이 어딘가 존재하는 또 다른 나와 겪게 되는 갈등, 진짜 사랑을 찾으려 분투하는 모습이 먼저 와 닿지만 멜로드라마답게 후반으로 갈수록 사랑의 신비함, 운명성에 대한 비중이 커진다. 료는 상대가 아야든 유리든 기억이 있든 없든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나눈 감정만큼은 진실이라고 외친다. 또한 처음 만난 아야에게 건네는 류의 말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마술이니까요”는 로맨스 영화의 고전이 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감독 노라 에프론)의 유명한 대사 “처음 만났을 때 깨달았어요. 그건 마법이었어요(It was like magic)”에 대한 오마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홋카이도의 풍광은 두 사람의 순수한 감정을 잘 뒷받침해주고, 핸드 헬드 카메라의 흔들림은 방황하고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정교하게 잡아낸다. 장면마다 다양한 분위기로 연출된 음악 또한 영화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완성도를 높인다. 무엇보다 곽재용 감독의 새로운 멜로드라마가 반갑다. (장르: 멜로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9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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