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미투(Me Too)와 어스투(Us Too)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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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6   |  발행일 2018-04-06 제39면   |  수정 2018-06-15
가해·피해자 음모론…진실게임까지…‘요지경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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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남성들 사이에 “여성은 약하다”는 인식이 널리 깔려 있었다. 여성은 생리적으로 남성보다 체력이나 정신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남성의 권리와 지위를 여성보다 우위에 두고 여성을 업신여기는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남존여비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전 도덕경(道德經)에 따르면 삼강오륜(三綱五倫) 중 부위부강(夫爲婦綱)과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아내는 남편을 섬기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부수적 장치로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치욕스러운 규범도 있다. 아내를 내쫓는 일곱 가지 조건이다. 철저한 남성우월주의가 아닐 수 없다.

 

하여 그 시대 양반가의 여성들은 은으로 만든 작은 칼, 즉 은장도를 옷고름에 차고 호신용으로 삼았다고 했다. 조신하게 정절을 지키고 만약 칠거지악(성폭력)을 당할 경우 차라리 자결하라는 끔찍한 유교문화의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남성은 열 계집을 거느려도 흠이 되지 않았다. 역시 남존여비사상 탓이었다.

일부다처로 한 지붕 아래 큰댁, 작은댁을 거느리고 줄줄이 자식을 낳아 키워도 당연한 가풍과 법도로 여겼다. 하지만 본출(本出)과 서출(庶出)의 신분이 엄격해 서출은 아예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다. 자연 갈등이 심해지고 비극적인 가정사(史)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TV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로그라인이다.

그 전통은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일제 암흑기를 지나 광복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재벌에 이르기까지 첩 거느리는 것을 사회적으로 그리 문제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축첩공직자들이 1970년대 이후 된서리를 맞고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들은 친자확인소송에 걸려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유교·남존여비사상
여성은 ‘약자’인식
美 여성운동가
“성폭력은 폭력적 범죄”

문화예술계
집단적 ‘어스투’의 민낯
금전관계에 얽힌
불필요한 갈등 확산

양성평등의 시대
男女 인격·권리 존중
시대착오적 성범죄
미투운동사라질 것


그런데 이번에는 뜻밖에도 ‘미투’라는 태풍이 불어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놨다. 애초 검찰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연극·영화계와 문단 등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번지고 학계와 교육계는 물론 종교계와 정치권, 각 기업에 이르기까지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엄격한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며 정의 구현을 외치던 가톨릭 사제까지 연루되었다니 그 충격이 크다.

마치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누구든 걸면 다 걸리기 마련이다. 법치국가에서 법만 믿고 살아온 서민들은 아니나 다를까, 법조계의 부정부패가 잇따라 드러나고 미투의 진원지가 되자 더는 못 참겠다며 치를 떨고 있다.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성폭력 관련법 개정에 앞장서온 여성운동가 수전 브라운밀러는 “성폭력은 추악한 권력의 힘으로 자행되는 폭력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미투가 요동치고 있는 법조계와 정치권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특히 사이비 진보 권력의 민낯이 드러난 문화예술계에서 미투가 아닌 집단적인 어스투(우리도 당했다)가 벌어진 것은 그만큼 피해자가 많다는 이야기다.

원래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조직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도제식 후진 양성에 따른 스승과 제자의 엄격한 갑을 관계가 그 원인이라고 했다. 연예인 3명 중 2명이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폭력에 시달려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연극·영화계와 가요계에서는 기획사 대표나 연출가, 감독 등이 제왕처럼 군림해 왔고 피해자들은 노예처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문화예술계보다 하필이면 검찰에서 먼저 미투가 시작된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법과 원칙을 지키며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검찰의 손에 절대권력이 쥐어지자 조직 내부에서조차 파렴치한 일탈을 보인 것이다.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에서도 드러난 치부가 한둘이 아니다. 전·현직에 관계없이 줄줄이 부패고리에 걸려 학교(구치소)로 공부하러 갔다니 경악하고도 남을 일이다. 육법전서에 통달한 판·검사들이 화려한 경력을 두루 섭렵하며 잘도 해먹고 그것도 모자라 미투에 선착순으로 걸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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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더불어 살아가는 곳곳에서 누구든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법체계를 불신해 매스컴에 먼저 고발하고 사회적 이슈를 만든 다음 법적 대응에 나선다고 했다. 때문에 그동안 숨겨 왔던 수년 전, 수십년 전의 일까지 모조리 까발려지고 있다.

가해자들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며 몸조심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사악한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이제 와서 세상의 눈과 입이 무서워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음모론까지 등장하고 진실게임을 벌이다니 세상 참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실로 차고 넘치는 일탈의 행태에서 유교문화에 익숙한 국민정서상 모든 미투와 어스투 운동이 과연 정의로운가도 한 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도덕성의 본질이 훼손되고 금전관계에 얽힌 불필요한 갈등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던 사소한 농담도 미투 논란의 대상이 되어 여성기피현상이라는 역풍이 불고 있다.

새삼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문화의 잔재가 되살아난 걸까?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남녀평등의 시대다. 양성평등의 시대상에 걸맞게 남녀가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간다면 시대착오적 성범죄도, 미투 운동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 이미지 출처= https://www.thedailybeast.com/is-metoo-a-movement-or-a-moment

Demonstrators participate in a “Me Too” survivors’ march in Los Angeles on Nov. 12. 2017. (David McNew/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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