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광양 섬진강 갈미봉 쫓비산 청매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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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6   |  발행일 2018-04-06 제37면   |  수정 2018-04-06
눈꽃 만개한 매실나무 왕국 ‘사람 반 꽃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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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실농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황홀한 매화군락과 대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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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봄을 담고 둔덕에 핀 매화와 속삭이며 흐르는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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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군락과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홍쌍리 매실가와 장독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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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축제장 입구인 섬진강변에 있는 소녀와 금두꺼비상.

섬진강은 그리움으로 흐르고, 금두꺼비 울음으로 흘러간다. 섬진강은 하얀 모래밭 모래톱, 푸른 강물에 날리는 매화꽃잎, 섬뜩하고 아득하다. 아직도 찬 바람 목덜미로 파고드는 날, 봄물 오른 푸른 갈잎 서걱이는 섬진강가에 서 보았는가. 초봄 흐린 날, 다압 청매실 마을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 보았는가. 강에 실눈 뜨는 생명 가득하고, 강물에 그림자 드리워,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군락 보았는가. 사랑도 그렇게 피고 지는 것인가. 잔잔한 물결로 일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서럽게 떠내려간 홍매화 꽃잎처럼 붉게 울어 보았는가.

나의 트레킹은 관동마을 고샅길을 들머리로 시작되었다. 매화의 하얀 꽃이 수만 마리의 흰 나비처럼 바람에 흩날린다. 그 사이사이 매화나무는 연초록 잎눈과 줄기로 치장하여, 오히려 수려하고 신선하게 보인다. 초입에 포장도로가 나타나 산자락까지 이어진다. 벌써부터 산 향기가, 야생풀과 버무려진 싱그러운 향기가 우리를 혼몽하게 한다. 어머니의 체취와 흡사한, 젖가슴 모유 냄새와 비슷한, 그리움의 향기 물씬물씬 풍긴다. 나는 봄의 냄새에 취하고, 산바람에 취한 채, 배딩이재를 느릿하게 오른다. 한 시간이나 걸린 오르막에 땀이 후줄근하다. 전북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한 호남정맥이 용틀임을 하며 내려와, 기세 좋게 백운산을 빚어 올리고, 지맥을 형성하여 매봉 갈미봉 쫓비산 줄기를 펼쳤다. 날등길로 갈미봉에 오른다. 정상에 묘지가 있다. 산 정상이라면, 어김없이 오좌 자향이다. 명당이면 금반사치 혈이다. 금 쟁반에 죽은 꿩이 놓여 있는 형국이다. 발복할 수 있는 터다.

청매실 마을 섬진강가에서…
봄 냄새·산바람에 취한채
이른 야생화 꽃망울에 아찔
산 풀·바람·진달래도 먹어
큰폭의 아름다운 섬진강 줄기
아무리 먹어도 배는 안 불러

광양매화축제장
홍매화 붉은 속살이 몽환적
흰나비 떼 본것 같이 어지럼증
3대째 이어온 홍쌍리 매실가
2500여개 빼곡한 장독 장관
오가는 사람들도 웃음꽃 만개


갈미봉 좌측 아래 섬진강 보인다. 태고의 자연이 느껴지는 곳, 그 섬진강이 서러운 내 가슴으로 흘러와 봇물 터트리며, 갈미봉 마루 금 타고 흘러간다. 섬뜩하고 아득한 섬진강, 우측으로 백운산 정상이 아스라이 보이고 억불봉 힘을 뿜으며 가깝게 느껴진다. 바람재로 향한다. 노란 운무 머금은 것 같은, 이른 야생화 꽃망울 아찔하다. 산바람 쉬지 않고 불어온다. 온몸이 시원하다. 바람은 길이 없다. 바람은 나뭇잎 만지고, 나의 마음 만지며 분다. 바람재에 바람이 분다. 우리는 바람의 재를 넘는다. 바람재 지나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능선의 제법 넓은 공터 갈비 위에 앉아 밥 먹는다. 먹는 것을 잘 먹어야 한다. 공기와 물, 밥을 잘 먹고, 나이를 잘 먹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 그것이 나이를 잘 먹는 것이다. 트레킹을 하면 다 잘 먹을 수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산 풀과 바람을 먹고, 간간이 핀 진달래도 먹는다. 산에는 먹거리가 지천이다. 영혼이 맑아지면, 전부 먹을 수 있다. 드디어 쫓비산에 도착한다. 정상임을 알리는 목비가 나무에 달려있다. 산명의 어원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산 위에서 바라보는 큰 폭의 섬진강 줄기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다. 저 아름다움을 먹는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먹을수록 더 허기진다. 저렇게 아름다운 산하, 먹고 또 먹고, 나의 눈은 잔뜩 배불러 왔으나, 나의 영혼은 배부르지 않다. 저 강, 저 산 넘어 더 멀리, 더 높이 어딘가에 있을 법한, 영혼의 밥을 먹지 않고는 이 목마름과 배고픔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내리막길을 걸어 청매실 마을, 매화 숲에 도착한다. 새로 보는 매화 군락이 굉장하다. 장관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망울 터트리며 활짝 핀 홍매화 붉은 속살이 몽환적이다. 매화도 다양하다.

◆2018년 광양매화축제장 관람

청매실 마을에 도착한다. 함박눈이 내린 듯 눈부시다. 매화 향기 가득하다. 새하얀 눈꽃이 만개하여, 흰 나비 떼를 본 것 같이 어지럽다. 정자에 앉아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을 보며 땀 식힌다. 마을과 뒷산까지 온통 청매실 나무로, 매실나무 왕국이다. 일정 때, 이 고장 출신인 김오천 선생이 심었고, 그 후손들이 과학적인 영농법으로 매실관리를 한다고 한다.

3대에 걸쳐 매화를 가꾸어온 홍쌍리 매실가도 둘러본다. 2천500여개의 장독이 빼곡히 들어서 일대 장관을 이룬다. 매실 절임, 김치, 장아찌가 장독에서 익어가고 있다. 길가 바위에 한시가 적혀있다. 정도전의 시다.

“옥으로 아로새겨 옷 지어 입고, 얼음을 마시어 넋을 길렀네, 해마다 해마다 눈서릴 띠니, 봄볕 영화라고는 모르는가 보네.”

전체적인 뜻은 파악이 어려우나, 얼음을 마시어 넋을 길렀다는 구절이 가슴을 두드린다. 해마다 3월 중순부터 말까지 광양 매화축제가 열린다. 직거래 장터도 생기고, 매년 축제에 100만 명 이상 관람객이 방문하는 지역 대표 축제다. 광양만의 독특한 멋과 맛을 더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방문객의 환심을 산다. 오가는 사람들로 몸이 부딪힐 정도다. 이렇게 복잡하고 흥청망청해도 길 위는 자유롭다. 걸어온 길보다 더 아득한 마음의 길이 보이고, 이러한 앞길은 감동과 즐거움이다.

아무리 어려운 추위 속에 살아도 향기를 결코 팔지 않는다는 매화꽃, 사람 위의 꽃으로 분분하다. 수많은 음식점과 가게를 요리조리 피해 걷는데, 어디선가 왁자지껄하다. 사람들이 운집해 겨우 비집고 들어가 본다. 각설이 장터다. 장타령이 절정이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 허 품바가 잘도 헌다. 어 허 품바가 잘도 헌다. (헤-) … 육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육갑하고 지랄하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 만들어 보세 … 당신 본께로 반갑소 내 꼬라지 본께로 서럽소, 주머니가 비어서 서럽소 곱창이 비어서 서럽소 … 논어 맹자 읽었는지 자 왈 자 왈 잘 헌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 헌다.”

삶의 애환이나 세태를 풍자하고, 가사와 흥겨운 가락이 신명 나면서도 밑바닥 인생의 한과 아픔이 서리서리 느껴진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역마살에, 각설이는 영원한 반려의 노래다. 버스 출발 시각이 되었다. 6월이면 피기 시작한다는 밤꽃 무성할 때 밤나무 향기 찾아올거나. 버스가 섬진강 건너 하동포구로 간다. 산 따라 강 따라 흩날리는 봄, 하동포구의 노랫말이 새롭다. “물새 울고 달이 뜨는 하동포구의 팔십 리 뱃길.”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관동 주차장 - 갈미봉 - 바람재 - 쫓비산 정상 - 능선 삼거리 - 청매실 농원 - 매실 축제장 - 주차장

▶문의: 광양시청 관광진흥과 (061)797-2731

▶내비 주소: 광양시 다압면 지막1길 55 일원

▶주위 볼거리: 옥룡사지 동백숲, 광양역사문화관, 어치계곡, 매천 황현 생가, 화개장터,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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