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의 美’에 반하고 ‘석공의 味’에 빠지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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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6   |  발행일 2018-04-06 제33면   |  수정 2018-04-06
동아시아 최초 ‘석탑국’ 백제의 석탑미학 구축
국내 최고 화강암 품은 황등산, 미륵사와 교감
황등석·석탑·석공·황등비빔밥 빼곡한 스토리
‘석탑의 美’에 반하고 ‘석공의 味’에 빠지다
익산은 각종 수도를 4개나 가진 유네스코가 선정한 고대도시다. 미륵사지 9층석탑과 5㎞ 떨어진 곳에 있는 왕궁면 5층 석탑은 양탑과 음탑의 포스를 보여주는 국보. 왕궁리 탑은 달빛과 봄꽃이 교교하게 흩날리는 밤에 보는 게 더 고혹적이다. 진미식당의 황등비빔밥.(원안 작은 사진)

익산(益山). 군산과 전주에 가려서 보일 듯 말 듯한 고장. 망원경으로 보면 추수 끝난 벌판에 홀로 남은 나락 같은 ‘미륵사지 9층석탑’ 정도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현미경을 들이밀면 개미집만큼 빼곡한 스토리가 담겨 있는 곳 또한 익산이다. 전국에서 가장 특이한 육회비빔밥의 대명사이기도 한 ‘황등비빔밥’. 사람들은 이 비빔밥을 ‘익산비빔밥’이라 한다. 전주비빔밥 못지않게 미식가를 유혹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전국 최고의 화강석으로 불리는 ‘황등석(黃登石)’과 무관하지 않다.

익산에 와서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 IMF 외환위기 시절 ‘의적’으로까지 불리며 2년6개월간 전국을 돌면서 탈주 행각을 벌이다가 1999년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검거된 탈옥수 신창원의 고향이 익산과 한 생활권인 김제였다는 걸. 난 신창원이 체포될 뻔했던 ‘한국 최고의 숙성맥주골목’으로 불리는 익산시 중앙동의 한 호프집이 그보다 더 인상적으로 다가섰다. 신창원 때문은 아니겠지만 성당면에 가면 폐교된 성당초등 남성분교 자리에 교정청과 익산시가 협의해 지은, 멀리서 보면 꼭 진짜 같은 전국 유일의 교도소 세트장 역시 요즘 핫플레이스로 부각됐다. 영화 ‘홀리데이’ ‘7번방의 선물’ ‘신과 함께’ 등 모두 25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여기서 촬영됐다. 이즈음 세트장 안에 목련이 피면 그 철망 펜스에도 쇠로 된 꽃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바로 사랑의 열쇠보다 더 절절한 표정의 ‘사랑의 수갑’이다.

익산의 지명을 음미해 본다. 산이 있어 좋은 일이 더해져만 갈 고장. 그 산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륵산(彌勒山·해발 430m). 하지만 익산에선 산이 산이 아니다. 산을 ‘탑’이라 해야 익산스럽다.

경주만큼이나 유서 깊은 고대도시 익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도를 가진 곳이다. 고조선 준왕이 기원전 198년 남하해서 금마에 수도를 세운다. 마한 54개국을 총괄하는 도읍지 또한 익산이었다. 백제 무왕이 거기로 수도를 천도했고, 마지막엔 고구려 왕손 안승이 세운 보덕국의 수도 또한 익산이었다. 일본으로 말하자면 교토, 나라 정도의 표정을 가진 유서 깊은 곳이다.

백제의 공식 수도는 한성(서울 강남)·웅진(공주)·사비(부여)지역. 백제가 신라한테 먹히기 전 네 번째 천도 지역 또한 익산.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서 공주, 부여와 함께 익산 지역이 백제의 왕도 유적으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은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한 왕궁인 ‘왕궁리유적’과 삼국시대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지’. 현재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의 적용을 받는 도시는 경주, 부여, 공주, 그리고 익산이다.

동아시아 최초의 ‘석탑국’이었던 백제. 전탑의 나라 중국, 목탑의 나라 일본. 그보다 먼저 구축한 백제의 ‘석탑미학’.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은 백제 석조기술의 진수였다. 그걸 가장 탐냈던 신라였다. 백제보다 150년이나 늦게 불교가 전파된 신라는 상대적으로 늦게 석조문화를 꽃피운다.

나는 익산으로 가면서 미륵사 동탑, 그리고 미륵사에서 5㎞ 떨어진 곳에 있는 왕궁리 5층석탑을 친견할 설렘에 푹 빠져들었다. 더없이 낮아보이는 미륵사지 정문. 그 너머로 보이는 폐사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바람뿐이었다. 겨울은 지고 봄이 돋아나고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가림막이 쳐진 공사장이 보인다. 막바지 복원 작업 중인 미륵사지 서탑(국보 11호)이 그 안에 숨어 있다. 그 옆엔 93년 흩어진 석탑 일부의 잔해석을 갖고 복원한 하얀 빛깔의 동탑이 쓸쓸한 시선으로 폐사지를 굽어보고 있었다.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원광대에서 현장수업을 나온 여대생을 제외하곤 방문객은 거의 없다. 동탑조차 없었다면 사막처럼 펼쳐진 황막한 폐사지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희번덕해 보이는 동탑이었다. 보톡스시술로 말년의 미모를 유지해가는 중년 여인의 얼굴이랄까. ‘고태미(古態美)’가 아쉬웠다.

아무튼, 호젓해서 더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동탑과 서탑의 잔영을 더욱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게 조경해 놓은 두 연못 때문이다. 동지와 서지가 동탑과 서탑의 그림자를 받아낸다. 동지 옆 벤치는 꽤 근사한 포토존이다. 벤치에 앉아 수면에 흐릿하게 어리는 동탑의 잔영을 멍하니 본다. 갑자기 경주 불국사 옆 ‘그림자못’으로 불리는 영지(影池)가 오버랩된다. 바로 ‘무영탑(불국사 석가탑)’이 생각난 것이다.

미륵사는 양의 기운이 출중하다면 5㎞ 떨어진 곳에 있는 왕궁면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은 음의 기운이 짙다. 흐드러진 벚꽃잎을 배경으로 프레임을 잡으면 일본 유수 벚꽃관광지 사진 뺨칠 정도의 표정이 나온다. 난 미륵사 탑은 ‘양탑(陽塔)’, 왕궁리 탑은 ‘음탑(陰塔)’이라고 명명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달빛과 멀리 익산 도심지의 불빛이 음탑과 섞일 시점을 정조준했다. 1시간여 사투 끝에 ‘야궁음탑(夜宮陰塔)’ 그림을 하나 낚을 수 있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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