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소공녀’ 미소役 이솜

  • 윤용섭
  • |
  • 입력 2018-03-30   |  발행일 2018-03-30 제43면   |  수정 2018-03-30
“청춘들에 너무나 각박한 현실…N포세대들에 ‘미소’ 전할래요”
20180330

‘소공녀’의 미소(이솜)는 자신만의 확고한 삶의 방식과 철학을 지닌 여성이다. 일당 4만5천원을 받는 가사도우미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한 모금, 남자친구 한솔(안재홍)만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삶에 균열이 일어났다. 해가 바뀌면서 일당만 빼고 집세, 담뱃값, 술값까지 모조리 인상된 것이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미소는 자신의 취향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집을 포기한다. 그리고 대학 시절 함께했던 밴드 멤버들을 한 명씩 찾아가 몸을 의탁한다.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것”임을 스스로 위안 삼으며 말이다.

“내가 무척 하고 싶었던 작품이어서 회사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상관없이 무조건 한다고 했어요.” 충무로의 차세대 여배우로 주목받고 있는 이솜이 적극적으로 미소를 품은 건 “실험적인 작품,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영역에 늘 관심이 많았다”는 그녀의 연기 열정과 의지의 발로였다. ‘마담 뺑덕’(2014)에 이어 진짜 배우임을 증명할 확실한 관문이라고나 할까. 이번에도 그 관문은 별다른 장애가 되지 못했다. 제대로 물을 만난 듯 몸에 꼭 맞게 캐릭터를 소화한 이솜은 자신의 색깔과 매력을 좀 더 분명하게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특유의 러블리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비현실적인 미소 캐릭터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이솜은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또 한 번 인상 깊게 채워갔다.


원하는 대로 사는 비현실적 캐릭터
자신의 취향 지키기 위해 집도 포기
있는그대로의 주인공 미소 받아들여

평소 안재홍 팬, 상대역에 강력 추천
배려심·인간미 좋고 대화도 잘 통해
욜로·소확행 삶의 방식 중요한 시대
친구집 갈 때, 폐 안 끼치려 계란 선물

20代 초반엔 미래 불안해 치열한 삶
20代 후반 미소 만난 후 여유로움 알아
좋아하는 것은 포기하지 말고 살아야



20180330
영화 ‘소공녀’ 포스터

▶각박한 현실을 다룬 이야기지만 극을 끌어나가는 미소는 다소 현실성이 결여된 인물이다.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나.

“광화문시네마의 전작 ‘범죄의 여왕’에 고시생 경진숙 역으로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쿠키 영상에 나온 ‘소공녀’를 보고 무척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개봉이 언제인지 묻자 전고운 감독님이 아직 캐스팅 단계라며 시나리오를 건네주셨다. 읽자마자 유쾌함에 푹 빠져들었다. 집을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사는 미소는 기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서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매력이 있었다. 주변 인물들 또한 개성이 돋보였고, N포세대를 잘 그려낸 점도 좋았다. 여성이 중심이 돼 이야기를 풀어가는 캐릭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다.”

▶원톱 주연이라 부담감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캐릭터를 이해하고 접근했나.

“미소는 멋있는 친구지만 현실에선 보기 힘든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질문과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이 친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지 고민됐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있는 그대로 미소를 받아들이는 거였다.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촬영 내내 미소의 복장으로 매니저 없이 혼자 촬영장을 오갔다. 감독님도 짜인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현장 상황에 맞춰 즉흥연기가 이뤄졌고, 그 분위기가 적응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된 것 같다.”

▶평소 안재홍의 팬이라고 했는데 호흡을 맞춰보니 어땠나.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남자배우 1순위였다. ‘족구왕’(2014)을 보고 나서 완전히 광팬이 됐다. 이후 모 영화제에서 신인상 후보로 같이 올라온 적이 있는데 먼저 인사해주고 특유의 농담으로 나의 긴장감을 풀어주려는 모습이 되게 인상 깊었다. 내가 ‘소공녀’에 캐스팅되자마자 한솔 역으로 재홍 오빠를 추천했는데 이미 감독님도 점찍어 놓았다. 연기도 잘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인간미가 좋고 대화도 잘 통했다.”

▶미소는 옛 밴드 멤버들의 집을 방문할 때 꼭 계란 한 판을 사 들고 간다. 어떤 의미인가.

“민폐 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미소 성격이라면 빈손으로 찾아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소가 생각하는 선에서 가장 실용적이고 사람을 배부르게 만드는, 가성비 높은 음식이 아닐까. 그녀의 나이가 서른 살이기도 하니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물인 셈이다.”

▶취향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한 미소는 요즘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을 여실히 반영한다. 이는 집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기성세대와는 분명히 차별된다.

“그래서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공녀’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고민했던 건 미소가 친구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어떻게 그들을 위로해 주는 게 좋을지, 또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요즘 많이들 쓰는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소확행’(일상에서의 작지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란 말처럼 결국 이런 삶의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

▶미소는 이솜이라는 배우가 지닌 외모와 특유의 스타일리시함이 최적화된 인상을 준다. 미소의 스타일링은 어떻게 탄생했나.

“감독님이 미소라는 캐릭터에 최대한 멋스러움을 넣어 주었다. 가진 건 없지만 씩씩해 보이고 우뚝 선 느낌이랄까. 큰 키와 마른 체형 등이 때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이번엔 제대로 장점으로 승화된 것 같다. 스타일링 역시 특정 모델이나 레퍼런스가 있는 게 아니어서 감독님과 분장팀, 의상팀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구상해서 나온 결과다. 하얀 머리는 염색을 해도 그렇게 잘 안 나와서 물감으로 칠했고, 옷도 항상 겹겹이 껴입고 다녔는데 결과적으로 떠돌아다니는 미소의 상황을 더 잘 부각시켜준 것 같다.”

▶영화에서 미소의 유니크하고 엉뚱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실제 모습은 어떤가.

“20대 초반에는 미래가 불안하다는 생각을 늘 가졌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었다. 어릴 적부터 일을 해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특히 힘들었는데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미소를 만난 후 좋았던 건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됐고, 좀 더 여유롭게 사람 대하는 법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미소와 닮은 점도 있는데, 나도 그녀처럼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이후 미소가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미소가 한강 둔치에서 텐트생활을 하는 엔딩 장면을 보고 다들 불쌍하고 불행해 보인다고 말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미소의 불행은 현실에 치여 현실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건 뭔가.

“나도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미소처럼 집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부분을 제외하면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내겐 정말 소중하다. 그리고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여유다. 그 시간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다.”

▶모델로 시작해서 배우가 됐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어릴 적 꿈이 잡지에 나오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 운 좋게 중학생 때 패션잡지에 나왔고 열심히 모델 일을 했다.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오디션을 보고 독립영화부터 시작했다. 겁이 없는 편이라 연기를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도전했다. 그런데 내 얼굴이 좀 개성 있게 생긴 편이라 처음에는 스크린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되게 실망했다. 연기도 못한 것 같은데 얼굴까지 너무 못생겨 보이는 거다(웃음). 지금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장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고 만족해하며 살고 있다.”

▶2010년 영화 ‘맛있는 인생’으로 데뷔한 후 출연작이 20여 편에 달할 정도로 쉼 없이 달려왔다. 연기자로서 이솜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각인시킨 건 ‘마담 뺑덕’ 때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배우가 되면서 마음먹은 특별한 목표가 있나.

“일단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게 많지만 그래도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 배우로서 이솜을 알아가고 공부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담 뺑덕’은 내겐 정말 큰 도전이 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고, 인간으로서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자기 점검시간이 많아졌고 영화 현장을 더 사랑하게 됐다. 또 더 잘하고 싶은 욕심과 의욕도 생겨났다. 아직 특별한 목표는 없다. 단지 내가 만족하는 작품이나 캐릭터를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을 부족하지 않은 연기로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뭔가.

“어떤 기준이 있다고 해서 내가 다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시나리오가 좋고 캐릭터가 좋으면 오케이다. 좋은 캐릭터란 미소처럼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거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다.”

▶차기작은 정해졌나.

“내가 욕심이 많다. 그래서 더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 차기작 선택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적인 느낌이 나는 영화들에 끌리는데 20대의 마지막 작품을 ‘소공녀’로 장식한 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대중에게 이솜이라는 배우의 색깔과 매력을 좀 더 드러내고 각인시켰다는 점에서다. 아직 안 해본 장르가 많지만 액션과 스릴러는 꼭 해보고 싶다. 그런 장르물을 통해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