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겨울 멋쟁이는 얼어죽는다던데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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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7   |  발행일 2018-03-27 제30면   |  수정 2018-03-27
획기적인 청년일자리 대책
진정성을 의심하긴 싫지만
한시·제한적 지원이 몰고올
후폭풍에 대한 고민은 없어
겸손·고민 묻어난 정책 절실
[화요진단] 겨울 멋쟁이는 얼어죽는다던데

호사가들 사이에 ‘겨울 멋쟁이는 얼어 죽고 여름 멋쟁이는 더워 죽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무엇보다 맵시나 스타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행할 때 주로 듣게 된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는 ‘폼생폼사’. 포털 어학사전에는 ‘배가 고파도 예쁜 옷을 산다거나, 실력도 없으면서 좋은 도구만 사는 경우에 잘 쓰는 말’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남이 보기엔 분명히 추위나 더위로 힘들어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멋이 중요할 뿐 나머지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에 왈가왈부하기엔 좀 그렇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청년실업이 국가적 재앙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아픈 현안이다. 위정자 입장에선 당연히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사안이어서 어쨌든 해결해보려 용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모두 일자리 창출에 올인하며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방법론과 효율성, 그리고 방향성 측면에서 항상 논란이 따른다.

‘일자리’라는 게 참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꽤 오랜 기간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뚜렷한 돌파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난 2월 신규취업자가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음이 녹록지 않은 상황임을 대변하고 있다. 시장에 맡기기엔 당장 답이 없어 보인다는 판단 아래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청년일자리대책 보고대회를 열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4조원 규모의 추경예산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구인·구직 미스매치가 극심한 중소기업과 청년들의 접점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주목을 받았다. 여기엔 지방산단 중소기업에 신규취업하는 청년들에게 대기업과의 혜택 차이 1천만원 정도를 지원한다는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위해 정부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욕과 진정성을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물음표와 함께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말들이 많다. 취지는 공감하나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나온다.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는데 그 기간이 끝나면 어쩔 것인지, 해당 연령에서 제외되거나 이미 중소기업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또래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어떻게 해소할지 등에 대한 걱정이 크다. 이 모든 재원이 세금이기 때문에 상당수가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사실, 정부는 바쁘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대북문제 말고도 청년실업 해법을 내놔야 하고 노인일자리도 만들어야 하며 경단녀 취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초연결과 초지능을 특징으로 하는 거대한 흐름, 제4차 산업혁명에도 대비해야 한다. 로봇과 자동화 및 무인화 등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구조 속에서 시쳇말로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일자리가 어디서 파는 것이라면 웃돈 주고서라도 사 오고 싶은 심정이리라.

둘러보면 주변에는 아픈 손가락이 너무 많다. 엄지를 치료한다고 중지가 낫지는 않는다. 엄지에서 사라진 통증이 예기치 않게 나머지 손가락으로 분산될 수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의 하나가 상대적 박탈감이다. 이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반목과 냉소를 생산하는 진원지이기도 하다. 2시간 걸리는 하산길을 급하다고 30분 만에 내려온다면 위험하거나 다칠 수 있는 이치와 흡사하다.

한시적이고 일시적인 처방이 완쾌를 담보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중증환자를 종합병원에 데리고 가서 반창고나 붙인다면 환자의 기대치만 높일 뿐 근본적인 치료가 될 리 만무하다. 자고로 효율성이 높으면서 연속성을 가질 수 있어야 좋은 정책이다. 위정자가 옳다고 생각해서 실천하는 것이 맞아야 국가와 국민에게 득이 된다. 하지만 틀리거나 다를 수도 있다는 겸손과 고민 역시 언제나 필요하다. 꿈이나 이론보다 땀과 현장이 뭐든지 성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남긴 어록 하나가 깊은 울림을 준다. “지식의 가장 큰 적은 무지(무식)가 아니라 기존 지식이 주는 환상이다.”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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