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국정운영, 절차의 정당성 갖추고 있나…

  • 송국건
  • |
  • 입력 2018-03-26   |  발행일 2018-03-26 제30면   |  수정 2018-03-26
靑이 주도한 개헌안 발의로
국무회의는 형식적 심의만
커져만가는 비서실의 힘에
행정부와 여당패싱 일상화
정권 3각축 힘의 균형 중요
[송국건정치칼럼] 국정운영, 절차의 정당성 갖추고 있나…
서울취재본부장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이 오늘(26일) 발의된다.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재가한다. 진보정권에서 발의한 대통령 개헌안은 6·13 지방선거와 맞물려 내용과 형식, 절차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개헌여론전에 나서면서 헌법이 규정한 ‘발의 전 국무회의 심의’를 요식절차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헌법 89조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에 헌법개정안을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20일부터 사흘 동안 조국 민정수석이 분야별로 개헌안을 국민들에게 발표한 뒤 국무회의에 의결해 달라고 넘겼다. 물론 의결 전에 형식적인 심의절차를 거치겠지만 청와대가 발표한 내용에 토를 달 간 큰 국무위원이 있을까. 국가 중대사를 다루면서 국무회의가 청와대의 거수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6·13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기 위해 시간이 촉박한 건 맞지만 대통령 개헌안이 대통령 부재 중에 발의되는 상황도 어색하다. 여기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도 문 대통령의 UAE 방문을 수행하기 위해 어제 출국했다. 임 실장은 지난해 UAE와 외교마찰설이 불거졌을 때 특사로 다녀온 바 있어 베트남 방문엔 수행하지 않고 UAE에서 수행단에 합류했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가면 비서실장은 청와대에 남아 국내상황 관리를 하는 게 관례라는 점에서 특별한 수행이다. 임 실장은 역대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교했을 때 활동영역이 훨씬 넓다. 취임 초 각 부처에 자체 적폐청산TF를 만들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 정부가 마찰을 빚기 시작했을 땐 MB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전 실장과의 인연으로 ‘임-임 라인’을 가동한다는 말도 들렸다.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후보인 박영선 의원과 만나 경선구도를 놓고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남북대화 국면에서 청와대의 또 다른 실장인 정의용 안보실장은 특사단 대표였고, 지금은 임 실장이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러 논란을 일으켰던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 준비를 위해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가 귀국한 뒤 곧바로 UAE로 날아가 문 대통령 일행과 합류했다. 예술단 평양 공연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의 우리 측 수석대표는 작곡가 윤상이지만 청와대 3급 별정직공무원인 탁 행정관이 사실상 총감독 역할을 한다. 청와대 참모들이 국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는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이는 문 대통령이 그만큼 신뢰를 보내고 힘을 실어주기에 가능하다. 심지어 상근 참모도 아닌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송영무 국방장관과 갈등을 빚었을 때 엄중경고를 받은 쪽은 송 장관이었다. 엄중경고를 내린 주체도 국무총리가 아닌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가 국회 인준을 받았을 때 “제가 약속했던 책임총리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최대한 협조해달라. 일상적 국정과제는 총리가 해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총리실로 넘겨주면 좋을 것 같다”고 당부했다. 또 대선이 한창일 때는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면 다음 정부는 문재인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들리는 말은 온통 ‘내각 패싱’ ‘여당 무력화’다. 물론 새 정부 초반 국정운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당·정·청 3각축 가운데 청와대에 힘을 실어준 건 과거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거의 모든 대통령은 편리성 때문인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에게 의존했다. 그 결과는 ‘성공한 대통령이 없는 나라’로 나타났다. 국정운영에서 절차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도 청와대의 힘을 빼야 한다.서울취재본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