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어서 와요, ‘두잉 데모크라시’는 처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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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6 07:42  |  수정 2018-03-26 07:42  |  발행일 2018-03-26 제15면
[행복한 교육] 어서 와요, ‘두잉 데모크라시’는 처음이죠?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일부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서른 명의 학생과 그들과 함께 온 ‘삶’을 만나게 되었다. 늦은 저녁시간 아이들은 담임과의 첫 상담에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학교 활동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이 부족하다’ ‘공부를 하다 보면 로봇이 된 기분을 느낀다’ ‘친구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등의 제법 심각한 고민들을 토로한다.

담임인 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조언을 건네고, 해결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물음에 올해 제법 많이 등장한 것이 복장 불량으로 벌점을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공부하는데 불편함이 많다는 이유에서 제법 많은 학생들이 벌점 부과를 감수하고 교복, 체육복, 사복을 적절히 혼합한 복장을 착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외모를 가꾸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행위가 의미 있는 타자, 나아가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타자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어필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도 없이, 정말 많은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공부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학교를 상징하는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면 얼마나 좋으냐, 학생 때부터 상황에 맞게 옷을 입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등 교복 착용에 대한 근거는 명확하지만, 아이들은 교복 착용에 대해 언급한 단 몇 줄의 문장 속에서 힘들어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교복을 갖춰 입지 않았다고 그 아이에게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었다’는 명제는 교복을 입지 않은 상태만을 말해 줄 뿐, 그 학생의 다른 면을 보여주지 못한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고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교복 착용 문제.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선생님들의 생각도 듣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교복과 함께 체육복 등교도 허용할 것인지, 불편한 교복 대신에 착용감이 좋고 활동하기 편한 생활복을 지정할 것인지 등 교복 착용에 대한 다른 대안을 고민해 보는 과정은 ‘두잉 데모크라시’로 이어지고 있다. ‘두잉 데모크라시’는 동명의 책 ‘두잉 데모크라시’(인디고서원, 궁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교내 구성원들의 의사 결정 방법이다.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고, 창조적으로 논쟁하며, 상상력을 발휘해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는 과정으로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삶의 기술’을 목표로 한다. ‘교복 착용’이라는 고민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문제도 고민거리로 삼아 같이 생각해 보고,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과정은 분명 신나는 경험이다. 당연해 보이는 것을 정말 당연한지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 ‘두잉 데모크라시’를 벌이는 우리 학교가 놀랍고 자랑스럽다.

유능한 교사들은 자신의 성격, 대인관계 기술, 그리고 교수법을 이용하여 학생들의 신경가소성을 자극하고, 두뇌 발달을 촉진시키며, 학습 효과를 최대화하는 풍부한 신체적·지적·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책 ‘무기력의 비밀’(김현수, 에듀니티)은 말한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교사들은 매일 학습의 신경가소성에 대해 실험을 하는 신경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지지해주고, 격려해 주고, 애정으로 보살펴주는 관계는 학습에 관여하는 신경회로를 자극한다.

이 세상의 모든 교사는 매일, 매 순간 바로 그런 사람이 될 기회가 있다. 사람은 애정을 지닌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마음을 나눌 때 두뇌를 바꿔놓는 효과적인 학습을 하게 된다. 이것이 부족사회에서, 그리고 교사들과 학생들이 하나의 부족이 되는 부족 같은 교실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서로의 마음을 맞춰보는 그 자리에서 ‘두잉 데모크라시’를 벌이면 어떨까? 교사에게 당연한 것이 아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아이들의 생각도 일단 들어보자. ‘선생님은 온 마음을 다해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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