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양산 통도사

  • 류혜숙 객원
  • |
  • 입력 2018-03-23   |  발행일 2018-03-23 제36면   |  수정 2018-03-23
가장 일찍 피는 절집 매화, 분홍빛 수줍은 ‘봄인사’
20180323
영각(影閣) 앞 수령 350년의 자장매가 붉은 꽃을 피웠다(왼쪽). 통도사 일주문. 편액은 ‘영취산통도사’다. 일주문 앞에 능수매화가 피어나고 있다.
20180323
중로전의 관음전과 원통방 사이 시선의 끝에 통도사의 중심인 대웅전이 자리한다.
20180323
통도사는 계곡을 따라 동서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20180323
대웅전 꽃살문.

비가 오고, 이제 봄인가 할 즈음, 눈이 왔다. 지난겨울 추위와 가뭄은 혹독했기에 비도 눈도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뿌옇던 세상의 얼굴이 조금 말개진 듯했다. 곧 감기처럼 밤과 낮이 쿨럭였다. 그리고 신열처럼 꽃이 피었다. 그렇게 봄이 왔다. 통도사 일주문 앞에 능수매화가 꽃을 피웠다. 백매다. 말간 얼굴의 여인들이 꽃가지에 볼을 비빈다. 모두들 봄을 기다렸나 보다.

석가모니가 법화경 설법했던 영취산
독수리 머리같이 생긴모습 보고 명명
나라의 큰절…일주문 기둥에 주련 걸려

극락보전 만첩홍매·분홍매 화사한 빛
아래 모인 사람들 마치 화관 쓴 모습
영각 처마 밑 자장매 소담스러운 자태

대웅전 담장향해 허리굽히는 금강계단
자장스님이 모셔온 석가모니 사리 봉안



◆ 영취산 혹은 영축산 통도사

양산 영축산 남쪽 기슭에 큰절 통도사가 있다. 그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가 있다고 했다. 통도사IC를 통과하는 차는 드물었다.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는 차도 드물었다. 절집 초입의 빼곡한 가겟집들은 휑뎅그렁했다. 내심 고요 속의 독점을 기대하며 솔숲의 자태에도 눈길 주지 않고 일심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주차장은 이미 가득이다.

일주문에 ‘영취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 편액이 걸려 있다. 산은 영취산, 취서산, 축서산, 혹은 영축산이다. 이 많은 이름을 두고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는 2001년 영축산(靈鷲山)으로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영축과 영취는 한자가 같은데 불교에서는 ‘취’를 ‘축’으로 읽는 것이 보편적이라 영축으로 정했다 한다. 영취산은 원래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다는 산으로 그 모양이 꼭 독수리 머리같이 생겼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영축산 정상의 바위군을 올려다보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머리독수리.

일주문 기둥에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주련이 걸려 있다. 절집 중의 으뜸이요, 나라의 큰절이라는 뜻이다. 이는 불보(佛寶), 즉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는 은근 근엄한 말이다. 통도사는 신라 진골 귀족이었던 자장 스님이 선덕여왕 때인 646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당나라에서 석가모니의 머리뼈와 어금니, 그리고 사리 100알과 부처가 입었던 가사 한 벌을 가지고 와 이곳에 금강계단을 쌓고 봉안한 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했다 한다.

통도사는 동서로 흐르는 계류를 따라 길게 누운 대지 위에 40여 개의 크고 작은 전각이 들어선 모습이다. 신라, 고려, 조선의 전각들이 뒤섞여 있다. 이는 창건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국지대찰의 위상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거쳐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축선은 거의 200m에 달하고 공간은 상로전(上爐殿), 중로전(中爐殿), 하로전(下爐殿) 세 영역으로 나뉜다. 각각은 중심 전각을 가질 만큼 독립적이지만 강한 축선으로 이어져 통일성을 잃지 않는다. 전각들은 어느 것도 위압적이지 않다. 어느 것도 치장에 몰두하지 않았다. 피로감을 주지 않는 정갈한 마을 같다.

◆ 자장매, 만첩홍매, 분홍매

천왕문을 통과하면 하로전이다. 가장 아래에 있는 향 사르는 절집 영역으로 중심 전각은 영산전이다. 사위가 소리 없이 수선스럽다. 극락보전의 반야용선 너머로 화사한 빛이 가득하다. 만첩홍매가 겹겹의 꽃잎을 활짝 펼쳤고 그 곁에 분홍매가 수줍게 섰다. 아래에 모여든 사람들이 화관을 쓴 듯하다.

영산전 뒤편은 더욱 수런거린다. 영각(影閣)의 처마 아래 한 그루 매화나무가 소담스러운 자태로 꽃 피우고 서 있다. 수령 350년의 홍매화인 자장매(慈臧梅)다.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 스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자장매는 임진왜란 이후 훼손된 통도사를 중창하던 시기에 심었다고도 하고 혹은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 해마다 음력 섣달에 분홍빛 꽃을 피웠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탑돌이 하듯 나무 주위를 맴돈다. 모두가 좋은 얼굴인데 꽃을 향해 대포와 같은 카메라를 겨냥한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고함친다. 꽃나무를 둘러싼 폭력적 언행이 심심찮게 일어난다더니 그것은 소문만이 아니었다.

◆ 대웅전과 금강계단

불이문을 통과하면 중로전 영역이다. 좌우의 전각들은 저절로 물러나 시선은 이미 상로전의 대웅전과 마주한다. 대웅전은 통도사 전체의 중심 전각이다.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북쪽은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이 각각 걸려 있다. 동선대로 차곡차곡 다가가면 마주하게 되는 것이 대웅전 편액이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인조 때인 1645년에 중건했다. 그러나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대웅전 앞에 대형화로가 있다. 붉은 향을 사르고 합장한 이들은 대웅전 옆 담장을 향해 허리를 굽힌다. 담장 너머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있다. 석가모니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곳, 그래서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대웅전 남쪽을 돌아 대방광전 편액이 걸린 서측으로 들면 작은 연못이 있다. 아홉 마리 독룡이 살았다는 구룡지(九龍池)다. 자장 스님이 통도사를 세울 때 연못을 메워 단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다는 전설이 있다. 가람을 수호하기를 원했던 한 마리 용이 이 작은 연못에 산다고도 한다.

구룡지 옆 산령각 기단 위에 올라서면 담장 너머 금강계단을 볼 수 있다. 출입은 금지되어 있지만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허락하는 듯 담장이 낮다. 석종의 사리탑이 보인다. 2층의 기단 위 중앙에 종 모양의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 주위로 석책을 두르고 석문을 두었다. 금강계단 위로는 어떤 날짐승도 날지 않고 주변에서 지저귀지도 않는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가 쓴 글이 있다. ‘석가모니는 오랜 세월 동안 하늘에 눈길을 던진 채 꼼짝도 않고 사막에 앉아 있었다. 신들도 그 돌 같은 지혜와 운명을 부러워했다. 뻣뻣하게 내밀고 있는 그의 손 안에 제비들이 날아와서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비들이 날아가 버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욕망도 의지도 명예도 고통도 모두 비워버렸던 그분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돌에서 꽃이 피게 되었다.’ (작가수첩I). 그리고 석가모니는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말하고 보리수 아래에서 입멸했다. 대웅전 문살에, 기단에, 계단의 소맷돌에 꽃들이 피어나 있다. 영원에 가깝게.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가다 통도사IC로 나가면 된다. 통도사 산문 앞에 주차장이 있고 일주문 앞에도 주차장이 넓다. 주차비는 2천원, 입장료는 성인 3천원, 청소년 1천500원, 어린이 1천원이다. 통도사 매화는 일주문 앞에 능수매, 천왕문 지나 오른쪽에 만첩홍매와 분홍매, 영각 앞에 자장매가 자리하고 중로전의 장경각 옆에도 어린 홍매가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