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미투(Me Too)’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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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1   |  발행일 2018-03-21 제30면   |  수정 2018-03-21
권력 위에 성도덕이 있음을
성도의의 필요성을 경고한
남성 위주의 성문화 붕괴
미투는 성의 몰락이 아니라
新 성문화의 터닝포인트다
[동대구로에서] ‘미투(Me Too)’

성(性).

누군 성을 ‘우주의 꽃’이라고 했다. 남녀의 성. 그게 충돌한다는 건 빅뱅.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한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대전제. 성에는 우열도 없고 고하도 없었다. 인류는 그런 성의 찬연하고 경이로운 가치 때문에 감히 돈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았다. 순결(純潔)과 정조(貞操)는 성의 양대 덕목이었다. 극치적 의미의 성은 거기까지만 유효했다.

어느 순간 성도 때가 묻고 사회화되어 갔다. 유산, 피임약, 인공수정 등으로 인해 성은 자연산에서 ‘양식의 범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세속(시장경제)의 공간으로 틈입하면서 ‘악마의 시간’도 함께 몰고 왔다. 권력이란 물건이 생겨나면서부터 성은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뇌물로 진상되기도 하고 거래되기도 했다. 천사표 성 옆에 악마의 성이 편승한 것이다.

성이 교묘해지고 조건의 존재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성이 심지어 ‘살의(殺意)’를 띠기 시작한다. 여성의 성은 묵살되고 남성의 성만 활개를 쳤다. 남성의 성욕을 위해 여성의 성이 징발되기 시작한다. 모 대통령은 ‘아랫도리 이야기는 고려치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선조 양반은 ‘1처3첩’이 묵인됐다. 결혼한 뒤 아내는 성적 대상으로 존중받지 못했다. 선비의 성적 상대는 아내가 아니라 오히려 기생이었다. 고을 사또 정도면 합법적으로 관기로부터 ‘수청(守廳)’을 받을 수 있었다. 춘향이는 그 수청을 거부해 옥고를 감내해야만 했다. 연산군은 기생문화 활성화를 위해 국고를 탕진한다. 거국적 주지육림을 위해 채홍사(採紅使)를 통해 ‘흥청(興淸)’이란 기생을 색출해 왔다. 그 시절에 과연 미투가 성사될 수 있었을까.

아이는 성장하면서 ‘성의 늪’을 건너가야만 한다. 수컷과 암컷은 이때 엄청난 진통을 겪게 된다. 자신만이 알고 자신만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한갓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그 상처가 ‘누룩’처럼 작용해 수컷은 남성, 암컷은 여성이 될 수 있다. 그 여성과 남성이 교합해 낳은 자식이 혈연이란 쇠사슬에 묶일 때 비로소 그들은 한솥밥 인연, ‘식구(食口)’가 되는 것이다. 식구의 범주에 도달한 성은 고단한 행로를 끝내고 차츰 충동적인 성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건 평생 세거지 대가족 안에서 살다 가야만 했던 농경사회에 국한된 건지 모른다.

산업화 과정에 많은 이들이 성공과 출세를 위해 도시로 몰려들었다. 익명의 도시, 유부남과 유부녀는 그 세속도시의 삶 속에서 예상치도 못한 ‘성의 유혹’에 감금된다. 아직 봉오리도 맺히지 못한 성은 노동3권이 보장되지 못한 음습한 공장 기숙사 등에서 ‘동사’해버리기도 했다. 수컷들이 통제하고 있던 그 시절 사법은 그걸 통제하지 못했다. 시민이 여론을 주도할 수 없던 시절이라서 더 그랬다. 갑이 연대해 쉬쉬하면 그대로 묵살됐다. 그래서 모든 남자의 성은 불문가지였다.

출세를 향한 여가수, 여배우 등은 더더욱 자기 성의 결정권자가 아니었다. ‘성상납’이 공공연하던 시절이었다. 정치인, 대기업 회장 등 갑의 성적일탈은 그들의 전리품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을의 성적일탈에만 철퇴를 가했다.

이젠 아니다. 최상위포식자는 스마트폰을 거머쥔 ‘다중(Mass)’이다. 그들은 아니다 싶은 그 누구도 아웃시킬 수 있다. 미투는 성의 몰락이 아니다. 새로운 성문화의 터닝포인트다. 도덕적 기반이 없는 리더십과 명성이 무의미하다는 걸 증명해 보여줬다. ‘알파걸’들은 권력 위에 성도덕이 있다는 걸 힘 있는 자에게 경고한 것이다. 장사에도 상도의가 있듯 성도 ‘성도의(性道義)’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줬다. 누군 그걸 ‘앙시앵 레짐(남성 독점의 구체제 성문화)의 붕괴’라고 했다.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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