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지방분권 개헌, 골든타임 또 흘려보내나

  • 박규완
  • |
  • 입력 2018-03-19   |  발행일 2018-03-19 제31면   |  수정 2018-03-19
[월요칼럼] 지방분권 개헌, 골든타임 또 흘려보내나
박규완 논설위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후하게 평가한 인물이다. “민주화는 산업화를 이룬 후에야 가능하다.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누가 뭐래도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모델”이라고 찬양했다. 이런 토플러가 2001년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한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체제가 지식정보사회에선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제안했다. 개발독재를 지지했던 토플러도 중앙집권체제의 한계를 간파했던 거다. 토플러는 심지어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조차 지속적 경제 번영을 위해선 연방정부의 권한을 과감하게 지방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데 우린 여전히 중앙집권의 구각(舊殼)을 깨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 지방자치 관련 대목이라곤 117·118조 달랑 두 조문뿐이다. 지방자치가 시행되지도 않았던 1987년에 개정된 헌법이니 자치와 분권을 제대로 다뤘을 리 만무하다. 헌법에 명시된 지방자치단체라는 어휘도 마뜩지 않다. 관변단체나 친목단체도 아니고 지방정부를 단체라니 생뚱맞고 의아하다.

지방분권 개헌은 모든 지방민의 비원(悲願)이다. ‘2할 자치’를 벗어나는 길이며 열악한 지방정부 재정을 건전화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괴리를 좁힐 유일한 방책이다. 그럼에도 지방분권 개헌에 딴죽을 거는 세력은 견강부회의 논리로 지방민의 개헌 의지를 침잠시키려 든다.

미국·독일·일본·스위스 등 선진국은 지방세 비중이 40%를 넘고 하나같이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다. 특히 국가경쟁력 세계 1위에 단골로 오르내리고 국민소득 8만달러인 스위스는 분권 국가의 표상이다. 연방정부와 26개 주 2천636개의 시·군으로 구성되며, 지방정부는 주민투표를 통해 세율을 자체 결정할 수 있다. 스위스 경제학자 르네 프라이 교수는 “스위스는 지방정부끼리 끊임없이 경쟁하니 잘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분권체제가 경제혁신의 엔진이라는 의미다.

우리도 분권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경제성장의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하지만 분권국가에 대한 염원은 점점 더 희석돼가는 형국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공방을 벌이는 개헌 논의는 정략의 냄새만 물씬 풍긴다. 이달 말 정부 개헌안을 발의할 예정인 청와대나 오는 6월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자유한국당이 다 그렇다. 게다가 이들의 개헌안은 권력구조 개편에만 매몰됐을 뿐 지방분권은 뒷전이다. 한국당은 여야 합의로 6월 개헌안을 발의한다는데, 그때까지 간극이 큰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하기란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당이 굳이 6월 개헌안 발의, 9월 국민투표라는 개헌 로드맵을 제시한 저의는 뭘까. 반개헌 세력이 아님을 강조하는 코스프레로 여겨진다.

지방분권 개헌의 골든타임은 6월 지방선거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여야 간 이견이 별로 없는 국민 기본권 및 지방분권 강화만 반영한 개헌안을 마련해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하는 방법이다. 국회가 발의한다면 심의기간과 공고기간을 감안하더라도 4월28일까지 개헌안을 완성하면 동시투표가 가능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개헌안 동시투표 불가 방침은 요지부동이다. 한국당의 6월 개헌안 발의가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 이유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얼마 전 “글로벌 시대에 왜 일본말 사용만 문제가 되느냐”며 같은 당 이은재 의원의 ‘겐세이’ 발언을 두둔했다. 동시투표를 거부하는 한국당의 행태야말로 명백한 지방분권 개헌 ‘겐세이’다.

6월 지방선거를 그냥 흘려보내면 개헌 추진동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권력구조 개편을 두고 정치권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여느 정권 때처럼 개헌 자체가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비서 김지은씨에게 보낸 문자 ‘괘념치 말거라’는 비수처럼 잔인하다. 한국당은 지방선거·개헌안 동시투표가 불발돼도 “연내 개헌을 하니 괘념치 말라”고 할 건가.박규완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