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춘풍 이유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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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9   |  발행일 2018-03-19 제31면   |  수정 2018-03-19

지난주 초반 대구의 낮 기온이 20℃를 오르내렸다. 3월 중순의 기온 치고는 대단했다. 일부 시민들은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여름이 와버리는 것이 아니냐”며 이상 기후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주부터 다시 예년 기온으로 회복한다니 자연의 순환은 경이롭다. 본격적으로 봄바람이 불고 있다. 싱그러운 춘풍속에 산수유와 매화는 벌써 피었고 벚나무도 이제 꽃망울을 탱탱하게 부풀렸다. 조만간 시새워 벙글어질 것이다.

시인 서정주는 ‘풀리는 한강가에서’라는 명시에서 반가운 해빙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어라 다시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라고 읊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는 이유가 수온상승 때문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게 시인의 능력이고 감수성이다. 그렇다면 봄바람은 왜 부는가. 춘풍이 부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하면 합당한가. 더구나 관찰자의 전공과 해석에 따라 춘풍이 부는 이유도 달라진다.

기상학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다만 기압골의 차이에 의해 바람이 불 뿐이라고 과학적으로 잘라 말한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바람이 일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인들의 관점은 역시 문학적이다. 여성들의 치맛자락이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하기 위해서 바람은 분다고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생물학자들은 좀 더 생태 과학적으로 규정한다. 거미와 같은 생명체를 멀리 분가(分家)시키기 위해서 바람이 불어줘야 한다고 당위론을 편다. 한꺼번에 알에서 깨어난 수백마리의 새끼 거미들은 인근에 모여 살 경우 먹이 부족으로 공멸할 수 있다. 그래서 새끼 거미는 알에서 나오는 즉시 인근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봄바람을 타고 몇백m에서 몇 ㎞까지 휙휙 날아간다. 각자 멀리 헤어져 정착할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바람을 동경하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가수 김광석은 경쾌한 기타곡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라고, 추구하는 새로운 꿈의 터전을 바람 부는 곳으로 표현했다. 시인 안수동은 ‘바람이 부는 이유’라는 제목의 시에서 ‘언제고 부둥켜 안고 가야 할 내일의 두려움을 날려 버리려 그렇게 바람은 부는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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