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미투를 넘어서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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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9   |  발행일 2018-03-19 제30면   |  수정 2018-03-19
[하프타임] 미투를 넘어서
최미애 문화부기자

공연을 보다 보면 가끔 불편한 순간이 있다. 지난해 봤던 한 연극도 그런 경우였다. 극 중 한 남성이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이 있었다. 인간의 잔인한 본능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던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런 장면이 나왔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기자보다 앞서 낮 공연을 보고 나온 한 연극인은 “학생들이 단체로 왔던데, 그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건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이 미투(Me too) 운동이 활발해진 2018년에 공연됐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작품의 완성도가 높더라도 평가가 마냥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투 운동은 공연계에서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공연계에 흥미로운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기존에 그대로 공연했던 장면이라도 관객들이 불편할 수 있다면 그 부분을 수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달 12일 공연을 시작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여주인공 알돈자가 집단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없애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을 표현하는 방법을 바꾸기도 한다. 지난 16일부터 공연 중인 뮤지컬 ‘삼총사’는 호색한으로 나오는 포르토스의 성격을 일부 바꾸기로 했다. 왕용범 연출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포르토스가 10년 전에는 즐길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 다시 보니 비호감이었다. 굳이 여자를 밝히는 성격을 남자답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밝혔다.

공연계의 이런 변화는 의외였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살리기 위해 이런 표현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공연 내용이 바뀌게 된 건 미투 영향도 있겠지만 공연 관객 중 여성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연출가와 주요 배역의 배우는 남성의 비중이 높다. 연극, 뮤지컬에 등장하는 주인공만 봐도 대부분 남성이다. 반면 여성 캐릭터는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이거나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틀에 갇혀 있다. 여성 캐릭터가 워낙 한정된 탓에 상대적으로 남자 배우보다는 여자 배우들이 나이가 들면 설 자리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도 있다. 미투 이전에 창작됐지만, 서울 세종M씨어터에서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레드북’의 주인공 안나는 공연계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다. 여성의 성(性)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소설을 발표하고,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성추행을 시도하는 평론가에게 한 방 먹이기도 하는 인물이다.

사실이 명확하지 않은 고발도 나오면서 미투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미투로 인해 이전에 조명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새로운 면을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을 더 보고 싶다. 삼총사의 포르토스가 호색한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남성스러움을 표현하게 됐듯, 여성스러움을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도 나오길 기대해본다. 고전에 갇혀 있는 남성과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보다는 현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을 그대로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연극은 자연에 거울을 비추는 것’이라는 햄릿의 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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