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인간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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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9 08:14  |  수정 2018-03-19 08:14  |  발행일 2018-03-19 제22면
[문화산책] 인간 가면
김주원<대구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

프랑스 미술가 피에르 위그의 영상작품 ‘무제(인간 가면)’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그야말로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폐허가 된 도시 후쿠시마를 떠났고 그곳엔 그 누구의 삶도 미래도 있을 수 없다. 19분짜리 위그의 영상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유령도시 속에 혼자 남겨진 ‘누군가’를 포착하고 있다. 하얗고 매끈한 가면과 긴 머리칼의 가발을 쓴 그 ‘누군가’는 지극히 소녀다운 원피스를 입고 있다. 누굴까? 분명 인간처럼, 소녀처럼 보이는데…. 우리가 궁금해할 즈음 위그의 카메라는 이야기와 감정이 읽히는 반복된 동작의 가면 쓴 ‘누군가’를 클로즈업한다. 그 순간 우리는 가면 쓴 신체가 인간과 다른 조건을 지녔음을 알게 된다. 털로 덮인 팔다리와 꼬리를 가진 인간처럼 보이는 원숭이였다!

도쿄 근교의 한 전통식당에서 일하는 ‘원숭이 종업원’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은 상당수에 달하며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한다. 식당을 찾은 사람들이 올린 이 동영상들은 자신에게 물수건을 건네고 자신이 주문한 맥주를 서빙하며, 자신과 허그도 하는 ‘인간이 아닌’ 인간 같은 원숭이의 ‘인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놀라움과 찬사를 반영한다. 유튜브 동영상을 본 피에르 위그는 재난 후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 속 혼자 남겨진 ‘원숭이 종업원’이라는 인위적인 시나리오를 설정한 후 유튜브 속 원숭이를 섭외했다. 그리고 제작된 작품이 ‘무제(인간가면)’다. 작품 속 원숭이 종업원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식당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사람의 옷을 입고, 가발과 가면을 쓴 원숭이는 텅 빈 식당 안을 목적 없이 돌아다닌다. 잠시 쉬기도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멈춰 있으며 춤을 추듯 움직이기도 한다. 때론 자신의 얼굴을 만지듯 가면의 표면을 부드럽게 만지고 인조 머리칼을 매만지며 놀기도 한다. ‘인간다움’을 상징하는 저 가면 뒤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 같은’ 혹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원숭이의 고독한 제스처와 처지는 비극적이면서도 묘하게 관능적이다.

위그의 이 작품을 두고 동물 착취에 관한 윤리적 문제를 다루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적’ ‘인간다움’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더 가깝다. 가면 쓴 원숭이가 얼마나 ‘인간 같은가’ 혹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가’에 대한 찬사보다는 ‘인간적’ ‘인간다움’을 포기한 우리와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에의 직시와 반성이 우선이다. 인간인 척 가면을 쓴 경우들을 요즘 들어 종종 보니 말이다.
김주원<대구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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