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자율학습’이 달라졌다

  • 이효설
  • |
  • 입력 2018-03-19 07:37  |  수정 2018-03-19 13:31  |  발행일 2018-03-19 제15면

고교 야간 자율학습(이하 야자)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전교생이 학교에 남아 교과 문제집 풀이, 시험 준비를 위한 공부를 했다면 최근엔 학생들이 교내 어떤 공간에서든 자유롭게 책을 펴들고 공부를 하는가 하면 친구와 짝을 지어 모르는 문제에 대해 묻고 답하며 수다 떨듯 자기주도적 학습을 하고 있다.


교내 원하는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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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곳곳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경대사대부고 학생들.



 경북대사대부고 ‘자기주도학습’
 전교생 중 60% 이상 자율 참여
 교실 외 자습실·복도서도 공부
 더 정숙한 분위기…집중력 향상
 신입생 적응기간엔 부모가 감독



◆야자 참여 자율에 맡기자 오히려 자율학습 정착

경북대사대부고(교장 손병조)는 학생 전원이 야자에 참여하는 원칙을 깼다. 학생들의 자율적인 의사에 맡긴다. 자기주도적 학습 형태다.

학교는 먼저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들었다. 학생들의 희망대로 수요일을 뺀 평일 자율학습은 오후 7시10분부터 9시까지, 심야 자율학습은 오후 7시10분부터 11시까지로 정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야자 참여자가 대폭 감소할 것이란 우려와 달리 현재 전교생 중 60% 이상이 자율학습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심야 자율학습은 4시간 연이어 공부할 수 있도록 별도 교실(50석)을 마련하면서 학생들의 인기가 높다.

처음부터 야자를 학생 자율에 맡긴 것은 아니다. 전원이 자율학습에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교사들 사이에서 이러한 방식은 학생들의 올바른 학습 습관 정착을 위해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학생들도 시간만 때우다 귀가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결국, 학교는 각 가정에 가정통신문을 보내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 동의서를 받아 희망하는 학생만 야자를 하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말 그대로 자율적인 자율학습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학교가 나서서 자기주도적 학습의 장을 마련하면서 자율학습의 모습도 사뭇 달라졌다. 기존엔 학생들이 교과서와 문제집을 펴고 예습 복습을 하거나 밀린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면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교실뿐만 아니라 자습실, 복도 등에서 자신의 공부를 한다. 교내 공간 어디에서든지 자습을 하고 또래교사 활동을 하고 자율동아리 활동도 한다. ‘자습은 공부’라는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 학교에서 자신이 원하는 학습을 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야간 자습실 체험도 눈길을 끈다. 3월 초 1주일 동안 신입생들이 야간 자율학습에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 기간에는 감독 교사 3명이 학생들 곁에서 지도를 하는 것은 물론, 참관을 희망하는 학부모도 자습감독으로 참여할 수 있다.

한 학생은 “부모님들께서 직접 자습실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지켜주시니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서 야자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엔 학교 선배의 지원으로 심야자습실을 독서실 형태로 새단장했다. 전보다 훨씬 쾌적해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2학년 김동현 학생은 “우리가 원해서 참여하니까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되고 계획적인 자습을 하게 되어 좋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야자를 강제로 실시하던 예전에 비해 더 정숙한 분위기에서 집중력 있는 자율학습이 이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분위기 덕에 지난해 입시 결과도 선전했다. 의예 및 한의예과 11명을 선두로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 85명이 합격했다. 공군사관학교 등 특수목적대학 6명, 경북대 47명, 영남대 82명, 계명대 62명, 부산대 11명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손병조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살아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성과 자율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한 시대로 본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학습하는 자기주도적인 학생으로 양성하고자 학교와 선생님들이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학생들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교육활동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친한 친구와 수다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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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화원고 학생들이 야자 시간에 서로 모르는 것을 묻고 답하며 공부하는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화원고 ‘말하는 공부방 하브루타’
 2명이 한 팀 이뤄 학습계획 세워
 공부할 과목과 주제 자율로 맡겨
 서로 묻고 답하면서 궁금증 해결
 배움의 즐거움과 인성함양 효과

◆친구와 묻고 답하며 몰랐던 교과개념 깨달아

대구 화원고(교장 현준우)는 ‘말하는 공부방’을 열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학생들은 함께 책과 노트를 보면서 모르는 문제를 묻고 답하며 공부한다.

이 학교는 2015년부터 ‘말하는 공부방, 하브루타 자율학습’을 운영 중이다. 참여 학생들은 2명이 한 팀을 이뤄 학습계획을 세우고, 학습내용을 선정한 후 야자 시간에 서로 묻고 답하면서 공부한다. 지난 3년 동안 무려 436명이 이러한 야자에 참여했다. 교사들은 하브루타 학습 관련 연수에 참여하고, 참여 학생들의 짝을 맺어주고 도서실과 회의실 등 공부방을 최대한 많이 마련해줬다. 공부할 과목, 주제는 학생들의 자율에 맡기되 학습계획서를 적도록 해 이 내용이 향후 방과후학습과 연계되도록 지도했다.

말하는 공부방의 장점은 뭘까? 가장 큰 장점은 배움의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면서 공부하면 수다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전정희 국어교사는 “몰입에서는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가, 수다에서 나올 때가 있어요.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지 않나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해결되는 그런 경험, 하브루타 공부방에선 바로 그런 효과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5년 스탠퍼드대학 연구진은 몰입하는 환경에서보다 자유롭게 걷거나 이야기하는 환경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공부방식을 체험한 학생들의 소감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3학년인 이서현·김창경 학생은 지난해 짝을 이뤄 하브루타 공부방에 참가했다. 이들은 “법과 정치와 같은 사회 과목 공부에 하브루타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법과 정치는 개념도 너무 어렵고, 학습할 양도 많았는데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개념이 명확하게 정리되었어요. 그리고 서로에게 의사 전달도 점점 분명하게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참, 이건 덤인데요. 하브루타를 하면서 우린 더 많이 친해졌어요”라고 말했다.

정다은 학생(2학년)도 “하브루타 공부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냥 우리는 묻고 답하기를 계속했을 뿐이에요. 묻고 답하면서 차츰차츰 궁금했던 것이 해결됐고, 보다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한편, 화원고는 2018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 27명, 의예과와 교육대학 6명, 경북대 27명을 포함한 대구·경북권 대학 347명, 금오공대 9명을 포함한 국립대 51명 등 졸업생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는 높은 진학률을 거뒀다.

현준우 교장은 “친한 친구끼리 짝이 되어 묻고 설명해 주고 또 묻고 대답하는 하브루타 자율학습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친구의 말을 귀담아듣는 능력과 존중, 배려, 협력 등의 인성 역량 신장도 덤으로 거두고 있다”고 그 효과를 강조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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