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한국의 미노타우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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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7   |  발행일 2018-03-17 제23면   |  수정 2018-03-17
[토요단상] 한국의 미노타우로스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그리스 신화 중에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나온다. 그 괴물은 상반신은 사람인데 하반신이 소다. 혹은 머리와 꼬리는 소이고 나머지 부분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 괴물은 원래 크레타의 미노스왕의 왕비인 파시파에가 하얀 소에 반해 그 소와 관계하여 낳은 자식으로, 성격이 매우 포악하였다. 먹는 것은 인육(人肉)뿐이고 사는 곳은 미궁(迷宮)이어서, 쉽게 볼 수도 잡을 수도 없었다. 이 괴물의 먹이를 공급하는 곳은 아테네로, 그곳에서는 매년 청년 남녀 각각 7명을 배에 싣고 가서 그 괴물의 먹이로 바쳐야 했다. 그런데 이 미궁에 들어가 이 괴물을 처단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테세우스라는 영웅으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맨 앞에 나오는 인물이다.

한국에 이 끔찍한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다면 믿겠는가? 분명히 있다. 다만 크레타의 소박한 미노타우로스가 아니라 술수가 무궁한 괴물이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존재마저 잊고 지낼 뿐이다. 일년에 수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좌절하거니 극단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다 그 괴물의 조화다. 이 괴물은 우리 청년의 목숨을 주식으로 하며 그 고혈(膏血)을 간식으로 한다.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고혈을 뽑힌 청년들은 실의에 빠져 사랑과 생산을 포기하고 만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나라 중에서 가장 높고 신생아 탄생 비율이 가장 낮은 것도 다 그 괴물이 부린 조화 때문이다. 이 괴물은 미궁 속에 살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으니, 사람들은 다들 잘 산다고 믿고 외제 자동차를 구입하고 해외여행을 다닌다.

이 괴물을 잡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명박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괴물을 처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그를 장군으로 삼아 무기 일습을 갖춰주지 않았나? 그러나 이 장군은 그 괴물을 잡으러 가다가 창의 끝을 뭉툭하게 만들더니 그것으로 강의 모래를 긁어모아 보(湺) 만드는 재미에 홀딱 빠져 버리고 말았다. ‘얼음 공주’라는 여성 한 명이 나타나 자기가 그 괴물을 잡아오겠다고 맹세했다. ‘창조경제’를 한다고 떠들더니 친구의 꾐에 빠져 나라를 진흙투성이로 만들어 놓고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미노타우로스를 가둬야 할 철창 속에 자기가 들어가 있다. 그다음에 또 그 괴물을 잡겠다고 나선 사람이 문 장군이다. 엉덩이에 흙이 묻힌 채 취임한 문 장군은 알고 보니 참 잔정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하나하나 악수를 하고, 어린이집에 가서는 마술 보조까지 할 정도로 자상하다.

그런데 문제는 괴물을 제대로 잡겠는가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메가톤급 현안이 밀려오는데, 언제 차분히 앉아 미궁의 괴물을 쿡 찍어낼 궁리를 하겠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이 교활한 괴물을 잡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온 국민의 사즉생(死卽生)의 결의가 필요한데, 우리 정치인들이 하는 짓거리는 ‘평창 올림픽은 평양 올림픽이다’고 선동하는 수준이다.

일본의 아베 장군은 확실하게 한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일본의 미노타우로스를 잡아 처치한 일이다. 그를 일본의 테세우스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미노타우로스의 뼛조각을 구경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젊은 장수 마크롱도 그 나라 미노타우로스의 숨통을 끊을 것 같다.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가 그 괴물을 잡을 대책을 낸 것이 21번이라고 한다. 취업률이 나빠지기만 하는 것을 보면, 그 대책이라는 것이 차 마시며 서로 덕담한 내용을 적어 발표한 것이 아니었겠나. 미노타우로스가 웃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누가 우리를 놀리기 위해 한 말 같다. 지난 15일에 또 만든 대책 역시 근본적으로 괴물의 숨통을 끊어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괴물의 생태나 우리 경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아직도 차 마시며 덕담하는 수준이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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