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거주하기 편해야 한다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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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7   |  발행일 2018-03-17 제16면   |  수정 2018-03-17
건축은 본연의 목적이 가장 중요
작가주의가 만연한 건축이 아닌
거주자의 기쁨·행복 위해 지어야
건축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거주하기 편해야 한다
저자가 찍은 롱샹 성당의 모습. 저자는 외관으로는 완벽하나 성당으로서의 기능에는 실망했다고 말한다. <뜨인돌 제공>
건축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거주하기 편해야 한다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김광현 지음/ 뜨인돌/ 708쪽/ 3만5천원

‘건축설계는 새로운 것, 남이 이제까지 말하거나 만들지 않은 것, 뭔가 전위적인 것을 ‘발명’하듯이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훌륭한 건축가는 자기만의 것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는 것, 표현하고 싶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그 무엇을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는 사람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이 삶을 만들고 삶을 바꾼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대의 연출자가 건축가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연출자는 그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 그 집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건축가는 사는 사람의 생활을 결정해준 게 아니고 단지 생활이 이루어지는 무대를 만들어준 것일 따름이다.’

우리는 오늘도 무수히 많은 건축물을 지나고, 무수히 많은 건축물 안에서 살아간다. 집이라는 건축물 안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으며, 회사라는 건축물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각양각색의 건축물 안에 들어간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건축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건축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

이 책은 42년 동안 서울시립대와 서울대에서 강의하고 지난달 정년 퇴임한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쓴 책이다. 책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건축물에 대한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강의와 책을 통해 “우리 모두는 건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건축물 안에서 일하고, 수많은 건축물을 보며 어딘가를 가더라도 건축물이 곧 이정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건축물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건축은 기술을 사용하되 사람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직접적으로 묻는다. 사람은 집을 통해 자기가 바라는 바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집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건축은 예술적으로 잘 지은 집을 감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고 밝힌다.

저자의 이런 생각이 가장 잘 나타난 부분은 프랑스 동부의 유명 건축물인 롱샹 성당을 방문한 부분이다. 건축사에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세계문화유산에도 이름을 올려 놓은 이곳을 저자는 다르게 평가한다. 저자는 감탄하며 눈으로만 둘러봤던 두 번의 방문에 이어 세 번째 방문에서 직접 미사를 해보고 다른 평가를 내린다. 그는 “제대 위에 빛이 제대로 들지 않고, 소음처럼 엉키며 감도는 어수선한 소리를 들었다. 이날 여러 신부와 함께 미사를 드리면서 나는 예전에 건축하는 사람들과 갔을 때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롱샹 성당의 결함을 생생히 체험했다”고 말했다. 성당은 말과 소리와 빛과 몸으로 미사를 드리기에 좋은 장소여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즉 건축이라는 것은 그 건축물 본연의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건축은 본래 단순하고 소박하며, 인간의 어려운 생각이나 별난 사유를 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평소 그의 철학을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건축은 미학적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주자들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700여 쪽의 방대한 양이지만 명료하고 단호하다. 건축은 예술이 될 수 없음을 논증하는 폭넓은 근거들을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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