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대구 간이역 지금은

  • 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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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7 07:49  |  수정 2018-03-17 07:49  |  발행일 2018-03-17 제5면
기차는 사라졌지만 驛舍(역사)는 남아…오늘도 사람과 사람 이어준다
20180317
위부터 동촌역·금강역·고모역·반야월역. 반야월역사 작은도서관에서 강혜빈 사서가 책장에서 책을 꺼내고 있다(맨 아래).

옛 추억 속으로 사라진 폐역과 간이역들이 부활하고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작은도서관, 레일카페,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변신해 지역민의 쉼터이자 소통·문화의 공간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단지 열차만 사라졌을 뿐 역사(驛舍)는 그대로 남아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간이역에서 작은도서관으로

지난 13일 대구 동구 입석동 대구공항 인근 동촌공원을 찾았다. 이곳에 도착하자 초록색 기와지붕에 연회색으로 칠해진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ㅅ’자 형태의 지붕 아래 흰바탕에 가지런한 글씨로 ‘동촌(東村)’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옛 대구선 간이역이던 동촌역이다.

대구선 동촌역은 1917년 11월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1938년 7월1일 대구~영천 구간이 광궤선으로 개량되면서 지금 모습의 역사가 지어졌다. 옛 대구선 구간에는 반야월역과 금호역, 동촌역 등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역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동촌역이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박공(ㅅ자 형태의 지붕) 형태의 지붕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12월 등록문화재 제303호로 지정됐다.


동촌역 도서관 장서 4천권
반야월역은 8천여권 구비
금강역 레일카페 조성 1년
안심창조밸리 랜드마크로



대구선의 대구 시내구간은 주택가와 맞닿아 있어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때문에 1993년 대구선 이설 계획이 확정됐고, 2005년 동대구~청천 구간이 대구시 외곽으로 이전됐다. 이에 따라 이설 구간에 포함된 동촌역은 반야월역과 함께 여객 취급이 중단됐고, 2008년 2월15일 폐역이 됐다. 이후 한동안 마땅한 활용방안 없이 방치됐으나 역사 주변부지 정비에 따라 원래의 위치에서 약 300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고, 2014년 5월27일 ‘동촌역사 작은도서관’으로 변신해 다시 문을 열었다.

건축면적 176.65㎡의 동촌역사 작은도서관에는 약 4천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내부는 복층 구조로 1·2층에서 자유롭게 독서를 즐길 수 있다. 특히 2층은 다락방으로 주로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책 위주로 장서를 배치했다.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운영한다. 동촌역에서 동쪽으로 약 7㎞ 떨어진 대구선 반야월공원에도 옛 반야월역이 있다. 이곳도 동촌역과 마찬가지로 대구선 이설로 문을 닫았다. 1917년 11월1일 대구선 신설에 따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고, 동촌역보다 6년 앞선 1932년 지금 모습의 역사가 지어졌다. 원래는 지금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안심연료단지 근처 동구 신기동에 반야월역이 있었다. 주로 대구지역에 석탄을 공급하는 기능을 했다. 동촌역과 함께 대구선 이설에 따라 2005년 11월1일 여객 취급을 중단했고, 2008년 2월15일 폐역으로 지정됐다.

반야월역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2006년 9월 등록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됐다. 2010년 도시계획에 따라 원래의 자리 주변에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동구 신서동 반야월공원 자리로 옮겨왔다. 건축면적 117㎡의 반야월역은 동촌역과 다르게

박공지붕이 건물의 중심이 아닌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철로 쪽 대합실 출입구에는 차양을 덧달아 본채 지붕과 차이를 두어 입체감과 함께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출입구 위에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쓰인 간판이 그 옛날 간이역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반야월역도 열차 기적 소리 대신 책장 넘기는 소리가 역사를 대신 채우고 있다. 2011년 11월29일 ‘반야월역사 작은도서관’으로 조성돼 지역민들의 안락한 쉼터로 자리잡고 있다. 1층과 2층 다락방에 8천여권의 다양한 장서를 갖추고 있다.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운영한다. 하루 평균 40~50명, 많게는 70명 정도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혜빈 사서(여·25)는 “동구지역 작은도서관 중 이용률이 가장 높은 편”이라며 “주로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들이 많지만, 조용히 책 읽고 싶어하는 분들도 자주 찾는다”고 설명했다.

◆연꽃 구경하며 향긋한 커피 한잔

동구 금강동 안심창조밸리에 가면 금호강 근처에 대구선 금강역이 있다. 금강역은 대구선 이설로 폐역된 동촌역과 반야월역을 통합해 2005년 11월3일 영업을 개시했다. 그러나 대구선의 통근열차가 폐지됨에 따라 2008년 1월1일자로 여객 취급을 중지했다. 이어 2013년 4월1일 승차권 발매 업무를 중단하고, 같은 해 10월1일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 역 운영을 중지했다.

한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금강역은 2014년 동구청의 ‘안심창조밸리 조성사업’이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동구청은 안심창조밸리 내 주요 거점지역으로 금강역을 선정했고, 지난해 4월 금강역에 레일카페를 조성했다. 레일카페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새마을호 폐열차 두 량을 개조해 만들었다.

금강역 레일카페는 문을 연지 불과 1년도 안돼 안심창조밸리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근처 연밭에 연꽃이 만발하는 하절기에는 하루 평균 200명, 주말이면 평균 6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동구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주말이면 금강역 광장 앞 야외 공연장에서 버스킹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광장 한편에는 로컬푸드 직매장을 마련해 지역 특산품인 연(蓮)관련 가공식품과 농산물을 판매해 지역 경제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동구청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중 시민제안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는 스마트 도서관(무인 도서대출·반납기)이 들어서면 지역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더욱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방치된 고모역, 복합문화공간으로

수성구 고모동에 있는 경부선 고모역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1925년 11월1일 간이역으로 문을 연 고모역은 가수 현인이 노래한 ‘비 내리는 고모령’(1949년 발표)의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31년 6월 보통역으로 승격됐고, 1970년대엔 연간 5만4천여명이 이용할 만큼 붐볐다. 당시 아침에는 역 인근 주민들이 채소를 내다팔기 위해 완행열차를 탔고 밤에는 군부대 전세열차에서 내린 신병들을 보기 위해 부모들이 역 주변에 진을 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승객 급감 등의 이유로 2006년 11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돼 역 운영이 중단됐다. 한동안 버려지다시피 했던 고모역은 2012년 부활의 기회를 맞는다. 한 민간단체가 코레일이 주최한 ‘간이역 위탁운영을 위한 국민제안 공모전’에 선정돼 2013년부터 ‘고모역 문화관’으로 운영한 것. 하지만 3년간의 성과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2016년 2월 위탁운영 계약이 종료된 뒤 2년 넘게 또다시 방치되고 있다.

이에 대구시가 지난해부터 고모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공모 선정돼 고모역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고모역을 전시 및 문화·휴식 공간으로 만들고, 그 안에 고모역과 관련된 각종 콘텐츠들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글·사진=박광일기자 park8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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