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로건 럭키·120BPM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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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6   |  발행일 2018-03-16 제42면   |  수정 2018-03-16
하나 그리고 둘

로건 럭키
불행 막는 길은 방심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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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많아도 ‘운’이라는 것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일진이 안 좋다’ ‘재수가 없다’ ‘행운을 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오래된 관용구는 사람 일에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 외에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작용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로건 럭키’(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들뜨게도, 불안하게도 만드는 ‘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다.

할아버지 때부터 로건 가족에게 일어났던 끊임없는 사건 사고는 아무래도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쟁에서 한쪽 손을 잃은 ‘클라이드 로건’(아담 드라이버)은 다리를 저는 형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에게 이런 건 정상이 아니라고 걱정스레 말한다. 지미는 미신일 뿐이라며 동생을 나무라지만 방금 직장에서 잘린 터라 로건 징크스의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쨌든 둘이 합쳐서 다리 세 개, 손 세 개인 로건 형제는 온갖 불행을 무릅쓰고 일명 ‘콜리플라워 작전’을 수행하기로 한다. 싱크홀 공사 중인 나스카 경기장, ‘샬럿 모터 스피드웨이’의 현금을 터는 것이다.


3대째 이어온 끊임없는 사건·사고는 우연일까
로건 형제, 불행 무릅쓰고 현금털기 작전 수행


함께 범죄에 참여하기로 한 폭탄 전문가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은 로건 형제를 소문난 멍청이들로 치부하지만, 지미의 계획은 기대 이상으로 꼼꼼하고 클라이드와 여동생 ‘멜리’(라일리 코프)의 실행력도 뛰어나다. 교도소에 있는 조를 교도관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탈옥시켰다가 다시 돌아가게 만들기도 하고 경기 당일 카드 결제가 안 되도록 하거나 경찰을 따돌리는 등 고난도의 계획이 척척 수행된다. 조가 끌어들인 두 명의 ‘정말 멍청한’ 동생들 때문에 아슬아슬한 상황을 맞기도 하지만 콜리플라워 작전은 마지막까지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더욱이 사건 당일 지미의 딸이 어린이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로건 가문에 어울리지 않는 행운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정말 우연히 술술 풀렸던 것일까, 아니면 예측 가능한 사고들을 사전에 방지한 로건 남매의 치밀한 계획과 성실함 때문이었을까. 지미의 딸이 대회에서 오랫동안 준비했던 곡 대신 갑자기 아빠가 좋아하는 곡으로 노래를 바꿔 부르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아빠와 나누었던 친밀한 대화와 좋은 관계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로건 남매와 조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처음에는 영문도 잘 모르고 이용당했던 사람들은 결국 콜리플라워 작전의 중요한 공로자로서 보상을 받게 된다.

위기는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믿는 그 순간에 찾아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행운의 여신의 미소 속에도 얼마든지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음을 코믹하게 암시한다. 결국 불행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심하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엔딩 크레딧과 함께 쨍하게 떠오른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유머가 연신 웃음보를 자극하고, 영화 속에서라면 얼마든지 응원하고픈 사회적 약자들의 일탈이 유쾌한 작품이다. (장르: 범죄·코미디,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9분)


120BPM
침묵과 무관심은 죽음을 부른다


20180316

1989년 파리에서는 에이즈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지만 제약회사나 정부는 신약개발 및 지원책에 적극적이지 않다. 에이즈 감염인 권리 보장 운동 단체인 ‘액트업파리’(ACT UP PARIS)의 멤버 중에는 이미 죽음이 코앞에 닥친 이들도 많다.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제약회사와 정부의 무책임함을 고발하는 한편 에이즈 확산을 방지하고자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의 멤버인 ‘션’(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은 에이즈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한다. 신입회원인 ‘나톤’(아르노 발로아)이 그런 션에게 빠져들고, 둘은 시한부 사랑을 시작한다.


에이즈 감염인 권리보장 운동단체 ‘액트업파리’
실제 활동 다큐처럼 연출…울림의 메시지 전달



2017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120BPM’(감독 로빈 캉필로)에는 감독의 실제 액트업파리 활동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영화의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 회의 장면들은 다큐멘터리처럼 담백하게 연출되어 현장감이 두드러진다. 같은 목표를 갖고 모였음에도 안건에 따라 의견은 꽤 많이 갈리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투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들의 모습에서 죽어가는 개인과 대비되는 이 특별한 단체의 생명력이 잘 느껴진다. 같은 맥락에서 ‘120BPM’이 영상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몸’이다. 활동가(activist)라는 명칭 그대로 그들은 학교, 회사, 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구호를 외친다. 이것은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섰던 그들의 용기와 헌신과 다름없다. 또한 액트업 멤버들은 클럽에서 하우스 뮤직에 맞춰 춤을 추는 데도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다. ‘120BPM’은 꽤 빨리 뛰고 있는 건강한 심장의 박동수임과 동시에 하우스 뮤직의 사운드 리듬이기도 하다. 영화는 클럽 댄스 장면을 종종 삽입하다가 결말부에서는 이것을 나톤이 동료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 활동가들이 보험업자들의 리셉션장을 급습하는 장면 등과 빠르게 병치시킨다. 세 개의 공간, 세 개의 행위가 뒤엉켜 보이게 만드는 편집은 ‘아직’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끼려는 듯 격렬한 인물들의 움직임만을 남긴다. 회의실 신들과는 달리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침묵, 무관심은 죽음이라고 외치는 액트업파리의 활동은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했기에 병을 키운 일들이 지금 얼마나 많이 그 썩은 살을 드러내고 있는가. 타인의 고통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은 유죄다. 죗값을 톡톡히 치르기 전에 ‘120BPM’의 메시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43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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