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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환 도예가는 계명대 산업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도예가 고이에 료지 선생에게 사사했다. 대구, 서울, 광주, 일본 등에서 28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 마시코도예미술관, 경기도 이천도자기엑스포 등에 소장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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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처음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이 꽤 많습니다. “어떻게 매일 그 많은 글을 쓰세요. 글 잘 쓰는 기자가 부럽습니다.” 흔히 기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알고 있는데 저는 기자가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있다기보다는 타인의 말을 압축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압축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이 말하고자는 내용을 잘 간파해 이를 글로 잘 표현하는 능력입니다. 즉 글의 정확한 주제와 방향을 잘 잡는다는 의미지요. 글이야 문학인이 기자보다 훨씬 더 잘 쓰지요.
경륜이 오래된 기자일수록 상대방이 하는 말의 핵심을 잘 파악하는데 이는 결국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듯합니다. 기자생활 30년이 다 되어가는 저도 어찌보면 이런 능력은 꽤나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간혹 복병을 만납니다. 취재원과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그분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글의 전체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취재를 하고 와서도 쉽게 기사를 쓰지 못합니다. 저의 경우 상대방과의 만남을 계속 되새김질하며 며칠을 고민한 뒤에야 겨우 글을 시작합니다. 깊은 고민이 결국 해결책을 만들어 주지요.
다행히 기자 경륜이 오래될수록 이런 난감한 취재원을 만나는 일은 줄어듭니다. 문제 대처능력이 상당 수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취재원이 오락가락하며 방향을 잘 잡지 못할 경우 그 방향을 대충 잡아서 제시를 하기도 하지요. 그러면 취재원이 “맞다”며 오히려 기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랜만에 저의 문제 대처능력을 시험대 위에 오르게 하는 취재원을 만났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전문환 도예가입니다. 10년 전쯤부터 전 작가의 작품은 자주 보아서 잘 알고 있었지만 작가는 ‘김수영의 그림편지’ 취재를 하면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동안 여러 전시장에서 봐온 그의 작품은 개성이 있어서 쉽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도예작품이란 것이 그 기능성 때문에 비슷비슷하기 십상인데 그의 작품은 좀 특이했습니다. 동물형상의 조형작품, 동물형상을 응용한 컵 등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다 그 동물을 실제동물과는 다르게 특이하게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전 작가는 특히 호랑이, 코끼리, 새 등을 형상화한 작품을 많이 작업했습니다. 이들 동물과 닮은 것도 있지만 이 동물이 무슨 동물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으면 어떤 동물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전시하는 주최 측의 설명을 들으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호랑이나 코끼리는 다리가 4개인데 그의 작품에는 다리가 2개, 3개인 것이 많습니다. 동물의 형상을 아주 단순화한 것도 관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실제의 동물을 전 작가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움과 이로 인한 호기심이 그의 작품을 본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지도 모릅니다.
전 작가를 만나고 나니 작품에 대한 여러 호기심이 슬슬 풀려나갔습니다. 쉰 중반에 들어선 그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는 나이의 흔적이 가득했지만 그에게는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함과 개구쟁이 같은 유쾌함이 살아 있었습니다. 동그랗고 호기심 가득한 눈에 약간 어눌한 말투까지, 세상사를 모르는 아이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도사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눈에 들어오는, 빛나는 눈빛에는 예술가의 광기가 서려 있는 듯도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전문환의 작품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지가 설핏 이해가 되기도 했지요.
‘Big Bird 2017’ 역시 새를 형상화하고 있지만 그 작품이 새를 소재로 했다는 것은 쉽게 알지 못합니다. 제목을 봐야 “그렇군” 하지요.
날개가 없는 듯한데 자세히 보면 몸통 부분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아마 그것이 날개인 듯합니다. 작가에게 물어보니 보는 이가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된다고 조언합니다.
그는 “무언가를 규정하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갈구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이나 감상자 역시 그러하기를 기대하는 것일까요.
그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 ‘폭발’과 ‘파괴’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려는 의지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행착오’ ‘실패’를 늘 가까이 두고 작업합니다. 실패 속에서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 그의 믿음입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실수를 통해 새로워지고 창조적인 것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그의 작품이 왜 그렇게 개성이 넘치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실패를 즐기는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그 실패의 끝은 성공입니다.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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