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플라타너스 가로수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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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5   |  발행일 2018-03-15 제31면   |  수정 2018-03-15

상주시 사벌면에 자리한 경천대는 넓은 잔디밭이 없는 것만 빼면 공원이 갖춰야 할 조건은 모두 구비하고 있다. 5년 전 조성된 공원 안의 공원-이색조각공원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황토색 조각품 20점이 전시돼 있다. 플라타너스를 이용한 조각인데, 높이 3~5m에 둘레는 어른 둘이 양팔을 벌려도 품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가장 멋지게 조성돼 있는 곳으로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가 꼽힌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길게 뻗은 거리에 도열하듯 서 있는 플라타너스는 여행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들의 가지런함은 가로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도 그게 수십 년간 한 가지 모양을 지향하며 전정(剪定)을 해서 만들어졌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원시 행궁동의 정조로(팔달문~장안문) 양편에 서 있는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인상적이다. 화성행궁광장 앞을 지나는 이 도로의 가로수는 사각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나뭇잎이 무성한 계절에는 얼룩덜룩한 양버즘나무 기둥이 녹색의 직육면체 조각품을 받치고 있는 듯하다.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의 바닥에는 보도블록을 깔지 않고 긴 트랙처럼 흙이 드러나게 해 놓았다. 대구에서는 수성로변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조경 교재에 수록될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다.

그러나 이들 가로수는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도 경천대 이색조각공원에 작품으로 서 있는 양버즘나무처럼 굵게 자라지 못한다. 뿌리가 숨쉴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수성로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가로·세로 1m도 안 돼 보이는 흙구멍에 서 있다. 공간이 좁다보니 뿌리가 땅속에 못 들어가고 밑둥만 기형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북구 태전동 운전면허시험장 교차로~보건대 네거리의 가로수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플라타너스의 땅에 닿는 부분이 고무가 흘러내린 듯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 좁은 상자에 갇힌 코끼리 발을 연상케 한다. 수원시 가로수 시책의 우수성은 양버즘나무를 사각기둥으로 전정한 것보다, 가로수 흙구멍을 트랙처럼 길게 터 놓은 데서 더 높이 드러난다.

봄을 맞아 지자체마다 본격적으로 가로수 정비사업에 착수하고 있다. 사업내용을 들여다보면 전정 일변도의 사업이다. 보도블록을 걷어내어 가로수 숨통을 틔워주는 정비사업을 하는 지자체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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