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철강산단 근로자 3년만에 10% 감소…41개 공장 휴·폐업

  • 김기태
  • |
  • 입력 2018-03-15 07:21  |  수정 2018-03-15 07:23  |  발행일 2018-03-15 제6면
위기의 포항 경제
20180315
철강의 도시 포항이 잇단 지진과 미국발(發) 관세 조치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포항철강공단 근로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최근 잇단 지진에 상권도 맥을 못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경영 악화·근로자 유출 등 악순환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포항철강산업단지 전경. <독자 제공>

포항 경제가 지진 피해와 미국발(發) 관세 폭탄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포항지역 철강업계는 중국이 철강산업 구조조정에 나선 2015년부터 움츠렸던 어깨를 조금씩 펴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망도 잠시였다. 미국 상무국이 같은 해 10월 한국산 송유관 강관에 대한 덤핑마진·상계관세를 부과하자 지역 강관업체는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 업체는 결국 감원을 통해 경영안정을 모색했다. 그러나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 9일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를 포함하는 규제 조치 명령에 서명한 것. 포항은 지금 산단 근로자 감소는 물론 전체 인구도 지속적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잇단 지진에 상권도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지난 1월 말 포스코 내 산소공장에서 근로자 4명이 질소가스에 질식해 숨진 사고도 근로자들의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포스코 근로자는 물론 지진 피해 복구로 분주한 포항시 공무원 등 지역 사회 전반에 걸쳐 회식 등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새로운 돌파구가 없다면 산단 업체 경영 악화, 근로자 등 인구 감소, 지역 상권 붕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작년 회복세 보이던 철강산단
美 관세폭탄으로 침체 늪 우려

지진·한파 영향 관광객도 감소
포스코 근로자 4명 질식사고 탓
회식자제로 이어져 자영업 타격

◆암울한 포항철강산단

포항철강산단 내 기업·공장의 휴·폐업이 잇따르면서 산단 근로자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13일 포항철강관리공단에 따르면 포항철강산단 근로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총 1만4천502명으로 2014년 10월(1만6천176명)보다 10.3%(1천674명) 감소했다. 이 가운데 2015~2016년 사이 1천387명이 현장을 떠났다. 이는 세계 철강경기 침체를 견디지 못한 동국제강·현대제철·세아제강 등 이른바 ‘빅3’가 감원·이동배치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대제철·동국제강은 포항 공장의 일부 생산라인을 없애고 당진·광양·창원 등 다른 지역으로 주력을 옮겼다. 또 2015년 10월 미국 상무국이 한국산 송유관 강관에 대해 덤핑마진·상계관세율을 부과해 강관업체인 세아제강·넥스틸·아주베스틸 등이 생산·수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넥스틸은 근로자를 1년여 만에 300여 명에서 100여 명으로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아주베스틸은 부도가 나면서 300여 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철강 경기 둔화에 휴·폐업 공장도 늘었다. 포항철강산단 내 270개 업체 343개 공장 가운데 41개 공장이 멈춰섰다. 대부분 철강산단 4단지에 위치한 금속 재가공 업체들이다.

◆미국發 ‘관세 폭탄’

중국 철강산업 구조조정으로 지역 철강업체들이 생산·수출을 늘려왔지만 최근 미국 관세폭탄 조치로 또 한번 고개를 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 부과를 강행한 것.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비롯해 현대제철·동국제강·세아제강·넥스틸 등 5개 기업의 대미 수출은 연간 220만t에 이른다. 포스코는 냉연과 열연 제품에 이미 60% 이상 고율 관세를 적용 받아 큰 타격은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강관 생산업체는 큰 타격이 우려된다. 원유와 셰일가스에 쓰이는 유정용 강관을 생산하는 세아제강은 현재 2.3~6.66%의 관세에 25% 관세를 추가로 부과 받는다. 이 업체의 미국 수출 비중은 20%에 이른다. 전체 매출액의 80%를 미국에 수출하는 넥스틸의 사정은 더욱 어렵다. 현재 유정용 강관에 부과된 29.76%에 25%가 추가되면 54.76%의 관세 폭탄을 맞는다. 생산·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포항철강산단 업체들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포항철강산단 업체들의 지난해 생산·수출액은 각각 13조9천101억1천700만원과 33억6천512만4천달러다. 전년 대비 16%·29%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철강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단가 상승으로 업황이 개선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관세 폭탄을 맞게 된다면 또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포항철강관리공단 관계자는 “세아제강과 넥스틸은 대미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관세 폭탄이 현실화되면 사실상 수출길이 막혀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아가 철강산단 기업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진·포스코 안전사고로 경기 휘청

지난해 11·15 규모 5.4 지진과 지난달 규모 4.6 여진으로 포항지역은 큰 피해를 입었다. 사유·공공시설 등 피해액은 1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도 주택 등 피해 집계가 진행되고 있다. 집을 잃은 이재민과 일부 시민은 여전히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지진 진앙지인 흥해지역 상권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생활고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또 지진에 주택·아파트 등이 큰 피해를 입어 주택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부동산중개소마다 주택·아파트·상가 등 매매 문구가 붙어있지만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2016년부터 지역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거래량도 줄고 매매금도 떨어지고 있다. 아파트값이 2천만~5천만원 등 크게 떨어졌지만 거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달간 한 건의 계약도 하지 못해 암담한 심정”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관광객 방문도 줄어들고 있다. 13일 한국은행 포항본부 ‘1월 경북동해안 실물경제 동향’에 따르면 포항운하관 방문객은 8천8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1만1천300명) 대비 21.8% 감소했다. 또 포항운하크루즈 탑승객도 5천3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7천200명) 대비 27% 줄었다. 포항본부는 예년보다 강한 한파와 포항 지진 여파 등으로 관광객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다 포항지역 소비층의 ‘큰 손’인 포스코 직원과 공무원들의 회식 자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말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4명이 질소가스에 질식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부는 포항제철소 안에 있는 38개 공장과 56개 협력사를 대상으로 노동행정·기계·전기·건축·토목·화공·안전 등 분야에서 강도 높은 감독을 했다. 경찰은 포스코와 외주업체 직원 등 1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이에 몸을 사린 포항제철소 직원들은 회식 등을 꺼리고 있다. 포항시 공무원들도 지진 복구와 최근 미투 영향으로 회식을 피하고 있다. 음식점·주점 등 자영업자들은 울상이다. 한 음식점 사장은 “과거 IMF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 지역 내수경기를 떠받치고 있는 포스코 직원과 공무원들이 회식을 꺼리면서 장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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