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대구당(黨)을 만듭시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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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4   |  발행일 2018-03-14 제31면   |  수정 2018-03-14
[박재일 칼럼] 대구당(黨)을 만듭시다

정당(政黨)은 영어로 ‘political party’다. 원래 부분(part)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부분은 전체를 전제로 한다. 부분 없이는 전체가 없다는 철학도 담고 있다. 나와 뜻이 다른, 나의 주장과 대치되는 부분이나 집단이라도 이를 용인하고 또 경쟁한다는 관용이다. 바로 정당제 민주주의다.

전체주의적 일당독재도 민주주의라고 종종 주장하지만 그건 억지에 불과하다. 실례로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놓고 2천964명이 투표해서 반대표가 2표 나온 중국은 공산당만 존재한다. 부분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다. 만약 애초부터 전체만 있고 부분이 없다면 민주주의를 할 필요도 없을 테지만, 인간사는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의 정당법이 시대에 뒤처지고 심지어 우스꽝스럽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 패권주의는 한국사회 전반을 감돌고 있지만, 정당법은 그걸 노골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정당법 제3조는 정당을 결성할 때 중앙당을 둬야 하고, 중앙당은 수도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강제한다. 민주적 관점에서 이게 타당한 규정일까. 여기다 제17조와 18조는 정당 설립요건으로 5곳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하고, 시·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확보토록 못 박았다. 찬찬히 뜯어보면 부분을 통해 전체를 지향한다는 정당정치의 철학이 왜곡돼 있다. 일사불란한 통일체를 강요하는 듯하다.

최근 경북대에서 지방분권리더스클럽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지방분권 시대와 지역정당’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하세헌 경북대 교수는 “작금의 국내 정당법은 중앙집중을 부추기고 지역정당의 설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못 박고 있다. 특히 중앙당을 서울에 둬야 한다는 규정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왜 중앙당을 대구나 광주에 둘 수는 없는가 하는 반문이다. 더 나아가 부분을 대변하는 정당이 왜 반드시 5개 시·도 이상의 전국적 조직을 갖춰야 하는가의 항변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인 2016년 4월 총선은 우리 정당사에서 씻기 어려운 수치스러운 기억을 남겼다. 당시 집권여당 새누리당은 당 대표가 직인을 들고 잠적하는 희대의 공천 파동을 겪었다. 이른바 ‘옥새파동’이다. 지역의 정치적 대표를 뽑는 당 공천과정이 중앙당 패권정치의 난장판이 됐고, 이는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붕괴를 유도한 서막이었다.

총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방선거에서도 중앙당 독점주의는 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횡행한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데 중앙당의 대표가 전략공천이니 뭐니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입을 대고 선을 긋는다.

사실 일본과 독일 등지에서는 중앙당 같은 규정이 없다. 정당을 하나의 결사체 개념으로 본다. 당연히 지역정당에 대한 규제도 없다. 일본만 해도 오사카 유신회(大阪 維新會), 도쿄 생활자 네트워크, 감세(減稅)일본 등 지역 정치인이나 지역 시민사회 주도로 설립된 정당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도쿄 생활자 네트워크만 해도 ‘인구 감소 사회에 부합하는 도시계획’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안전한 생활환경’ ‘식품안전의 철저한 관철’ 등 독특한 강령을 내걸고 있다. 50여명의 지방의원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선거에서 공식적 공천을 받는 것은 서울 중앙당을 가진 정당만 가능하다. 결국 중앙권력, 국회권력을 쥔 자들이 지방의회 권력도 움켜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기업을 설립하면서 본사는 서울에 두고 5개 시·도에 지사를 둔다면 벤처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정치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바꿔 말하면 대구에서도 대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 부산에서도 부산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이 출현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더구나 환경, 빈부격차, 복지, 생태 등 현대사회는 각종 이슈들로 무장한 ‘부분(part)들’이 분출하고 있다. 법을 바꿔서라도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현행 정당법이 결사의 자유(지역정당), 정치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의심이 드는 만큼,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걸어 위헌판결을 받아보자는 주장은 매력적인 제안이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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