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음주산행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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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3   |  발행일 2018-03-13 제31면   |  수정 2018-03-13

등산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국민레포츠다. 2015년 산림청에서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에 간다는 사람이 무려 1천300만명에 달한다. 그만큼 등산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방증이다. 우선 꾸준히 등산을 하게 되면 하체와 허리 기능이 강화되고 심폐기능이 향상된다. 칼로리 소모가 많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스트레스 해소와 우울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특히 숲이 선물하는 피톤치드와 풍부한 산소, 계곡의 음이온은 인체의 대표적 면역세포인 NK세포와 면역성분 글로불린을 증강시켜 천연항암제·자연항생제 역할을 한다.

건강 외에도 등산의 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 땀 흘린 뒤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맛은 빼놓을 수 없는 산행의 즐거움이다. 주당들 중에는 이 맛에 산을 찾는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산에 들기 전에 마시는 입산주, 계곡에 발 담그고 마시는 계곡주, 탁 트인 정상에서 여럿이 함께 나누는 정상주, 산을 내려와 친목을 다지는 하산주 등 술을 즐기며 붙인 명칭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음주산행도 과유불급이다. 도가 지나치면 사고를 부르기 마련이다. 지난 6년간 국립공원에서만 64건의 음주사고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사망사고가 10건이나 된다.

우리나라 등산문화는 술에 관대한 편이지만 음주산행의 위험성을 알고 보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산행 중 음주는 소뇌의 운동기능과 평형감각, 신체 반사신경을 둔화시켜 실족이나 낙상사고로 이어진다. 또 인체에 흡수된 알코올이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고, 혈압을 높여 심장발작·뇌졸중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더구나 산행 중 땀을 많이 흘리면 탈수현상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져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동안 무분별한 음주산행 규제를 두고 속앓이하던 환경부가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당장 오늘부터 국립공원·도립공원·군립공원 등 자연공원 안의 대피소·탐방로·산 정상부 등에서 음주행위가 금지된다. 6개월 계도 기간을 거친 뒤 9월부터는 과태료도 부과한다. 처음 위반 땐 5만원, 2차부터는 10만원이다. “국민정서에 맞지 않다. 지나친 간섭이다. 단속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등 반론도 없지 않지만 개인의 안전과 건전한 산행문화 정착을 위해 음주산행은 삼가는 게 맞다. 술은 안전하게 산을 내려온 뒤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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