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덕분에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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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2   |  발행일 2018-03-12 제31면   |  수정 2018-03-12
[월요칼럼] 덕분에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김진욱 고객지원국장

한 달 전쯤이다. 참 오랜만에 가슴 찡한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영남일보 덕분에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30년간 영남일보 지국을 운영한 72세 된 어르신이 필자에게 한 말이다. 이젠 체력적으로 힘들어 지국장을 그만한다면서, 영남일보로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하고 떠났다. 지국장은 신문사와 배달·판매 계약을 한 개인사업자다. 요즘은 종이신문 독자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 한 개 지국이 여러 신문을 배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지국장은 영남일보만 30년간 배달했다. 영남일보만 배달했으니 큰 돈벌이가 될 리가 없었다. 영남일보 덕분에 먹고는 살았겠지만, 잘살지는 못했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그분은 ‘영남일보 덕분에’라는 고마움을 전하고 떠났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들렸다.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 때문에 편하게 살았던 사람조차 떠날 때는 구성원을 비난하고 조직 자체를 폄훼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그래서 그 지국장의 마지막 말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영남일보 간부로서 고맙기도 했다.

‘~ 덕분에’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고, 많이 듣는 말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치켜세워주는 말이어서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나 역시 ‘덕분에 즐거웠다’ ‘당신 덕분이다’는 말을 듣고 좋아했던 기억이 제법 많다. 이 때문에 나도 ‘당신 덕분이다’는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

자기보다 을(乙)의 위치에 있는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면 더 돋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72세 지국장에게 들은 ‘영남일보 덕분에’라는 말만큼 인상적이었던 ‘~ 덕분에’는 지난주 지역 건설업체 대표에게 들은 것이다. 그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강조했지만, 난 ‘직원들 덕분에’라는 말이 더 귀에 들어왔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의 종업원 수는 120여명이다. 모두 정규직이라고 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직원들을 배려하는 오너 기업인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노후를 보장해 주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그는 요즘 감리업체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70세가 넘어서도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건설업체의 현장소장은 체력적으로 60세가 넘으면 하기 힘든데, 감리는 75세까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현장소장을 하던 직원들의 나이가 60세쯤 되면 감리회사로 옮겨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관련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해당되지만, 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그의 시도는 돋보였다.

그러면서 덧붙인 설명은 이랬다. “지금의 회사가 있는 것은 직원들 덕분이다. 당연히 직원들과 했던 약속은 지켜야 한다. 직원들과의 약속을 안 지켜서 조금 더 돈을 벌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의 회사는 설립된 지 10년이 됐다. 올해 매출이 2천500억원에 이를 정도로 많이 성장했다. 이런 성장의 공을 ‘직원들 덕분에’라고 했다. 그가 내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그의 회사에서 노사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직원들 덕분에’라는 마음을 갖는 기업인이 곳곳에 있길 바란다. 내가 일선 기자 시절에 만났던 기업인들과는 주로 업계동향이나 정부정책에 대한 영향과 같은 이야기만 했다. 그래서 지역 기업인들이 자기 직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직원들 덕분에’라는 마음을 가진 기업인들이 많을 것으로 믿고 싶다. 같은 마음을 가진 조직의 책임자들도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직원이다. ‘직원들 덕분에’라는 말이 넘쳐날 때 배려하는 사회, 정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당장 나부터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 덕분에’라고 더 많이 고마워해야겠다. 동시에 나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는 사람이, 나 덕분에 3월이 행복했다는 사람도 생겼으면 좋겠다. 김진욱 고객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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