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왜 민주당에서만 성추문이 나올까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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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2   |  발행일 2018-03-12 제30면   |  수정 2018-03-12
정치권에 번진 미투 운동
논란 중심엔 진보정치인
공작이나 음모론보다는
地選앞 높은 지지가 원인
야당도 당략적 접근 안돼
[송국건정치칼럼] 왜 민주당에서만 성추문이 나올까

팟캐스트 ‘나꼼수’로 유명세를 탄 김어준은 2월24일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예언을 하나 하겠다”고 했다. 예언의 취지는 이렇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재인정부 및 진보인사들에 대한 공작에 이용될 수 있다.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 되겠다, 그리고 문재인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거다.” 당시 사회 각계로 번지던 미투운동이 정치권에 옮아붙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공작’이 벌어져 문재인정부를 포함한 진보진영을 흔들 것이란 말이었다. 두 주 남짓 지난 지금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김어준의 예언이 있은 뒤 안희정 충남도지사(사퇴),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정봉주 전 의원, 민병두 의원(사퇴서 제출)의 ‘성추문’ 혹은 ‘불륜’ 의혹이 줄줄이 제기됐다. 네 사람 모두 진보정치인이다.

안희정은 ‘포스트 문재인’을 노리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다. 안희정의 친구 박수현은 충남도지사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 청와대에 사표를 낸지 얼마되지 않았다. 정봉주는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 뒤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나설 계획이었다. 민병두도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막 마친 참이었다. 정가에선 박수현은 ‘선두주자’, 정봉주·민병두는 ‘다크호스’로 꼽고 있었다. 네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안희정은 문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정부의 핵심이었다. 박수현은 문재인정부 첫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다. 정봉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관련 의혹을 제기한 혐의(허위사실 유포 및 공직선거법 위반)로 구속돼 실형을 살았고, 문재인정부 출범 후 단행된 지난 연말 첫 특별사면에서 정치인 중 유일하게 포함됐다. 민병두는 대선 때 문재인 후보 특보단 총괄단장이었다.

결국 김어준의 예언 중 적중한 건 문재인정부 진보인사들이 논란의 중심에 선 대목이다. 이 때문에 왜 민주당 사람들만 잇따라 연루되고 있느냐는 한숨이 여권에서 나온다. 그러나 김어준이 예언한 ‘공작’의 흔적은 없다. 지금까지의 상황전개를 보면 음모론이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문제가 되는 사건들은 10년 안팎이 된 일이거나, 최근의 일이라도 극도의 자괴감을 느꼈던 피해자들이 사회의 미투운동 열기에 용기를 얻어 들춰냈다. ‘왜 민주당만 있나’는 질문에는 정봉주에게 추행을 당했다는 현직 여기자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파렴치한 사람에게 그런 큰 일을 맡길 수 없잖아요. 서울시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니까요.” 물론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측의 일방적인 말일 수도 있다.

다만, 집권당이 된 민주당에서 6·13 지방선거 필승 확신감에 차 있고, 그런 기세에 올라타기 위해 너도나도 출마선언을 하는 시점에 미투운동의 불길이 정치권에 옮아붙었기 때문에 민주당 사람들이 논란의 중심에 선 측면은 있다. 이는 보수야당에도 경종이 돼야 한다. 과거 전직 국회의장의 골프장 성추행, 현역 국회의원의 보험모집인 성폭행과 제수 성추행 같은 추문은 모두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보수여당일 때 불거졌다. 지금 진보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음모론은 본질을 벗어나는 정치공학적 사고의 결과다. 또 보수진영에서도 이 문제를 지방선거의 호재로 판단하고 조롱거리로만 삼아선 미투운동의 진정성을 훼손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드러나고 있는 미투운동의 속은 보지 않고 겉만 살피며 은근히 정치적으로 편승하려는 기미가 여야 모두에서 보인다.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어온 미투운동을 도덕성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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