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야수의 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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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2 07:50  |  수정 2018-03-12 07:50  |  발행일 2018-03-12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야수의 허기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1159년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는 철궁 사용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기독교도 사이에 철궁 사용을 금했다. 그러나 유럽의 모든 군대가 철궁으로 무장하게 되었고, 철궁은 소총이 나올 때까지 계속 사용됐다.

소총은 등장하자 악마의 무기로 불렸고, 소총 사수는 일단 붙잡히면 무조건 처형됐다.

1546년 프랑스에서는 귀족이라도 화약무기를 소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왕명이었고,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재판 없이 곧바로 교수형을 당했다.

1964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핵폭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폭탄 사용을 금해줄 것을 요청했다.

새로운 무기가 개발될 때마다 새로운 공포가 생겨나지만, 그 공포는 무기를 만들거나 보유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오로지 더 강력한 무기가 생길 때만 지금의 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돌멩이와 몽둥이를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무기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핵폭탄까지 만들어졌고, 앞으로는 그 이상의 무기도 만들어질 것이다. 인류가 그 후에도 생존할 수 있다면 말이다.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는 전쟁을 반대하지 않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정당한 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화염에 휩싸이기 전까지 아직 축복받을 시간이 있다.

양쪽 진영의 사제들이 그 번지르한 손을 들어올릴 시간만 남아 있다면 말이다.

(…) 사제들이 라틴어 기도문을 암송하며 페스트를 물리치려는 동안 페스트는 조용히 인간을 집어삼켰다.

페스트의 진짜 원인을 파악하고 받아들이자마자 사람들은 미생물을 퇴치하기 위한 무기를 개발하고, 질병에 맞서 적절하고 효과적인 전투를 치르기 위한 방법을 발전시켜 나갔다.

사람들이 전쟁의 진정한 원인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하고 있는 한 그 어떤 조약이나 협정, 두려움도 전쟁이 일어난 전 세계 혹은 그 일부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인간은 두 가지 운명의 선택 앞에 서 있다. 자신이 자라난 요람 안에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영민함과 또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사멸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 속으로 도약해 죽고 죽이는 살상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 것인가. 이 선택에 미래가 달렸다. ….’ (르네 바르자벨 ‘야수의 허기’ 중)

1966년 초판에서 샤를 루이 필립을 차용해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양의 배고픔은 호랑이의 배고픔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당시 자신의 세대가 온전한 자연산 그대로의 ‘뿌리와 곡식과 흙 묻은 덩이줄기를 먹고 동물을 도살해서 그 고기를 조각내어 먹는’ 마지막 세대가 되리라 예감합니다. 공장에서 만든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다가 저는 인간의 허기, 그 끝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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