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강간과 성폭행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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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0   |  발행일 2018-03-10 제23면   |  수정 2018-03-10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27년의 사실(史實)이 오롯이 녹아 있는 역사적 기록의 집대성이다. ‘고종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도 있긴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편찬된 까닭에 사실이 많이 왜곡됐고 조선왕조실록에도 포함하지 않는 게 보편적이다. 국역 실록의 편리한 이용을 위해 1995년 전산화 작업도 완료했다.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강간’을 검색하면 461건(국역 209건, 원문 252건)이 나타난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서 ‘성폭행’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0건이라고 표시된다. ‘성폭력’ 역시 검색결과가 없다고 나온다. 당시엔 성폭행·성폭력이란 용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강간죄 같은 법률 용어 외에는 성폭행·성폭력으로 표현한다. 성추행과 성폭행을 뭉뚱그려 성폭력이라고도 한다. 언어순화 차원이다. 하지만 성폭행·성폭력은 강간만큼 전달감이 사실적(事實的)이지는 못하다.

태종실록 태종 4년 무술년 2월27일 기록엔 부모가 작고한 상전을 강간한 사노(私奴) 실구지 형제와 실구지의 처남 박질을 능지처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구지와 박질이 내은이의 손발을 묶고 강간하였다. 한성부에서 실구지 형제와 박질을 잡아다가 국문하니 사실대로 토설하였다. 의정부에 보고하여 계문(啓聞)하니 율(律)에 의하여 능지처참하였다.’ 사안에 따라 달랐겠지만 조선시대엔 강간을 극형으로 다스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간 미수는 곤장 100대, 유배 1천리라는 형벌로 다스렸다고 한다.

미투(#Me 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성범죄자의 흑역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구체적 폭로에도 오리발을 내밀거나 피해자가 고통 받는 사이 가해자는 되레 승승장구하는 사연은 만인의 분노를 자아낸다. 거장·원로라는 면류관을 방패막이로 삼으려 드는 행태도 보기 역겹다. 성범죄자 작품의 교과서 삭제와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는 당연한 수순이다. 왕조시대에도 강간을 엄한 잣대로 다스렸거늘 하물며 민주사회·법치국가에서 성폭행 범죄자들이 무탈하다면 순리가 아니다. 그리고 성폭행·성폭력보단 강간이 훨씬 더 ‘쎈’ 낱말이다. 잠재적 성범죄자에게 일말의 경종이 된다면 ‘강간’이란 말을 부활하는 게 나을 듯하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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