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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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43면   |  수정 2018-03-09
괴물이 되어버린 감독과 배우
#Me Too…끊임없이 쏟아지는 영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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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이윤택 감독. 김기덕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조재현이 주연한 영화 ‘나쁜남자’ 포스터. 배우 오달수가 출연한 영화 ‘대배우’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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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은 성폭력 피해자(생존자)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연달아 고발하는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 간 공감을 통해 연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처음 등장한 건 2006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시작한 캠페인이다. 타라나는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을 위한 단체 ‘저스트 비(Just Be)’를 설립하고 SNS에서 “Me Too”라는 문구를 쓰도록 제안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성범죄에 특히 취약한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연대 의식을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10년이 넘은 이 운동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된 계기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스캔들이다. 그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펄프 픽션’이나 ‘굿 윌 헌팅’ 같은 영화들을 제작한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로, 지난 30여 년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여성 배우와 직원을 성추행하거나 성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2017년 10월5일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이 추악한 제작자의 성폭력 혐의가 처음 드러났다. 기사에 따르면 그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수십 년 동안 성폭력을 행사한 이들 가운데 배우 애슐리 저드와 로즈 맥고완의 이름이 나왔다. 후속 기사에서 귀네스 팰트로, 앤젤리나 졸리의 성폭력 피해 증언도 이어졌다. 같은 달 15일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SNS를 통해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붙여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하루 만에 약 50만 건의 트윗이 뒤따랐으며 페이스북에만 처음 24시간 동안 1천200만 건 이상의 글이 올라왔다. 유명 배우들을 시작으로 문화계와 언론계, 정·재계 등 각계각층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고발했다.


‘펄프 픽션’ 美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
30년간 권력 이용 성폭력 면모 드러나
피해 고발 제안…각계각층 폭발적 호응

韓, 2016년 SNS 중심 해시태그 폭로
문학계 포함 예술계 전반 피해 알려져
가해자의 우월한 지위 이용한 성범죄
피해자 용기에 ‘위드 유’준비도 필요


한국에서는 이보다 앞선 2016년 10월 SNS를 중심으로 ‘#○○_내_성폭력’ 운동이 일어났다. 웹툰 같은 서브컬처 문화 내부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해시태그를 시작으로 문단, 교육계, 문화계, 연극계, 영화계, 직장, 학교, 교회, 대학, 가족 등에게 당한 성폭력 경험이 폭로되었다. 특히 문학계를 포함한 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피해가 알려졌으며 몇몇 유명 시인과 작가, 평론가, 큐레이터 등의 성폭력 관련 혐의가 드러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최근 이 운동과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의 바람을 타고 오랫동안 숨겨졌던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월14일 새벽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는 자신의 SNS에 10여 년 전 지방 공연 당시 이윤택 감독에게 당한 성폭력 일화를 공개했다. 이후 극단 ‘나비꿈’ 이승비 대표와 배우 김지현, 홍성주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고 이윤택이 속해있던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가 성폭력의 조력자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윤택은 연극 연출뿐 아니라 ‘오세암’ ‘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였으며 2003년엔 자신이 쓴 연극 ‘오구’를 배우 강부자와 이재은을 기용해 영화로 만들기도 한 감독이었다.

지난 3월6일 방송된 MBC ‘PD수첩’에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거나 촬영 도중 하차당한 여성 배우 세 사람이 나와 김기덕에게 성관계 요구나 성추행은 물론이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는 2012년 ‘피에타’를 연출해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다. 한국영화가 베니스·베를린·칸 등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은 ‘피에타’가 유일하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같은 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빈 집’으로 각각 감독상을 받은 세계적인 감독이었다.

배우 조재현은 2월23일 배우 최율의 SNS를 통해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데다 김기덕의 민낯을 고발한 ‘PD수첩’을 통해 영화 합숙 촬영 당시 수시로 여성 배우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가 성폭행을 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여기에 조재현의 매니저까지 가세한 것으로 알려져 시청자들은 분노했는데, 이 일을 겪은 여성 배우는 이후 배우를 포기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숨어 살다시피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천만요정’ 배우 오달수는 한 익명의 여성이 제기한 성추행 주장에 처음엔 부인하다 JTBC ‘뉴스룸’에 또 다른 피해자인 연극배우 엄지영이 실명으로 나와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자 사과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강검사로 나왔던 배우 조민기는 자신이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청주대 연극영화과 학생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연극배우 송하늘의 폭로로 드러났다. 그는 이미 지난해 말 학교 차원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품위 위반을 사유로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고 정직이 끝나면 사표를 수리하기로 했다는 것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 외에 배우 최일화, 한재영, 최용민, 김태훈, 조근현 감독, 이병훈 음악감독도 미투 운동을 통해 성추행과 성폭력 사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사건들은 모두 가해자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저지르는 권력형 성범죄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가해자를 고발할 경우 권력 차이로 인해 피해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윤택 성폭력 사건의 증언자 홍선주는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왜 이제서야 말하냐고 묻지 말고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해 달라. 주목받고 싶었냐고 묻지 말아주길 바란다. 이런 일로 주목받고 싶은 여자는 없다. 이 사건을 고백한 후에 내 가족들과 극단 신상까지 노출되면서 가슴 아픈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 이 사건으로 나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더 이상의 2차 피해로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도와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피해자들의 용기에 ‘위드유(#WithYou)’로 연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지. 이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니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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