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레트로’ 열풍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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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39면   |  수정 2018-06-15
나, 과거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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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으로 인기를 끈 가수 원더걸스(위)와 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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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위)과 영화 ‘택시 운전사’.

‘레트로’란 회상·회고·추억 등 과거사를 의미하는 용어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과거의 사회적 체제와 전통이 그리워 그것을 현실에 되살려 적응하려는 이른바 ‘복고주의’를 말한다. 인간의 뇌리 속에는 누구나 시대를 막론하고 스스로 경험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반추(反芻)하는 본능적 욕구가 잠재해 있다. 그 때문인지 최근 연예·패션·미술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과거의 직·간접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레트로가 유행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현실에 실재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의 의식 속에 존재하면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현실 너머의 판타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슈가 없는 것이 이슈’라고 할 정도로 특별한 문화욕구가 없어진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대중문화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여 웃음을 주는 영화·드라마·CF·음악 등이 대중문화에 갈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는 청량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레트로 문화는 기성세대들이 불만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나 힘들었던 시절, 그나마도 행복을 추구하며 보람있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호응한 정서적 충격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 대중문화 속으로 파고드는 레트로 스타일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기성세대만의 몫이 아니라 2030 젊은 세대들에게도 지금까지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해 왔던 과거사가 신선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만 가득한 현실 벗어나 추억의 감성
연예·패션·미술 등 문화계 전반 유행
기성세대 향수, 젊은층엔 호기심 자극
공감대·위로·낭만추구…화합의 고리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의 촌스러운 과거사를 들춰내 비아냥거리기보다 그 어렵고 힘들던 선대의 이색적인 볼거리와 독특한 감성에 젖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세대를 초월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특히 가요계에서 불고 있는 복고풍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과거 1990년대 인기 정상에 올랐다가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중견가수들이 대거 출연한 프로그램이 다시 클로즈업되고 있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이들의 과거 히트곡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뿐만 아니라 컴백한 가수들이 재결합해 발표한 신곡은 오랜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스크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계의 ‘레트로’ 열풍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는 영화를 시작으로 1990년대 유행했던 영화 주제음악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유행을 타고 기성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그 영향은 대중문화계 전반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흘러간 세월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역시 젊은 세대들에게도 이색적인 문화 코드를 선사하며 많은 연령대에 걸쳐 공감과 흥미를 동시에 끌어내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 이어 ‘강남 1970’과 ‘쎄시봉’은 한국 근·현대사의 치열한 생존 경쟁과 낭만과 국민 정서를 추억의 스크린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미증유의 동족상잔이던 6·25전쟁과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 1970년대의 개발경제 시절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와 추억의 소품을 재현함으로써 기성세대에게는 절절한 향수를 제공하고 젊은 세대에겐 역사의 현장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2017년에는 레트로 소재를 다루는 가장 트렌디한 두 작품이 연이어 개봉돼 새삼 가슴 아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은 민주화가 완성단계에 들면서 그동안 잊힌 비극적인 과거사를 재조명하는 의미로 제작되었으나 의외로 모든 국민에게 다시금 응어리를 심어주며 흥행을 기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어쩌면 레트로 열풍을 몰고 온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하나의 기폭제로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케이블TV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시대상황에 적응하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박한 가족과 이웃 등 소시민들의 애환 어린 일상을 담아내 드라마 속 서울 쌍문동 서민촌이 레트로의 대표적인 키워드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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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서의 레트로 또한 대단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추억의 만화영화 ‘영심이’를 리메이크한 ‘젊음의 행진’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수년간 재공연을 거듭하고 있는 스테디셀러 뮤지컬 ‘젊음의 행진’은 1980~90년대 이후 히트곡과 영화·드라마·CF패러디를 곁들여 다양한 세대가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아바의 ‘맘마미아’, 김광석의 ‘그날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도 레트로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처럼 대중문화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레트로의 특징은 시대적 배경이다. 과거사를 의식하는 기성세대에게는 끔찍하리만치 가슴 아픈 기억과 더불어 아름다운 추억도 안겨주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2030 세대들에겐 ‘새로움’이라는 역설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따지고 보면 결과적으로 레트로가 문민시대 이후 자유분방하게 표출되었던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봉합인 셈이다.

대중문화에서 비롯된 레트로 열풍은 상업적으로 활용돼 대중에게 소비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레트로 문화가 만들어내는 화합의 순환 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의식과 관점이 공감대 형성·위로·낭만추구·현실탈피 등의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구가 필요한 오늘날의 세태에서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흔히들 레트로를 고통스러운 현실 도피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표현하기 위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각박한 현실에서 반복되는 간난(艱難)의 일상에서나마 잠시 휴식과 정서적 안정을 찾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는 역할이 레트로 문화가 아닐까?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이미애는 계명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 팀장, <주>웨이브아이 기획실장을 거쳐 현재 계명대 미술대학 외래교수,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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