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괴롭힘·과한 업무·병원 무관심이 만든 ‘구조적 문제’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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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7 07:47  |  수정 2018-03-07 07:50  |  발행일 2018-03-07 제8면
병원 간호사 ‘태움’ 문화 원인은?
20180307
경력 1년 미만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이 33.9%로 알려진 가운데 대구지역 상급대학병원에서도 신입 간호사의 퇴직이 잇따르고 있다. 신입 간호사 상당수가 병원 내 도제식 교육방식인 ‘태움’문화 등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뭉크의 ‘절규’ 합성) 그래픽=최은지기자jji1224@yeongnam.com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사들이 의료계를 떠나고 있다. 전문직이라는 사회적 평판에도 불구하고 평균 근무 연수는 겨우 5년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신입 10명 중 3명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첫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움’으로 불리는 간호사계 특유의 조직문화에다 도제식 교육, 피라미드(연차 낮을수록 업무 과다)식 업무 분담, 병원의 이기적인 무관심 등이 이 같은 간호사의 조기 퇴직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간호사 평균 근무연수 5년 안팎
신입 30% 1년도 못버티고 퇴사

경력직, 일과·교육 업무 병행
신입은 ‘성가신 존재’로 전락
교육 중 괴롭힘으로 규율 잡아

실습기관 양적·질적으로 열악
학교-병원 괴리 탓에 적응실패
연차 낮을수록 업무 부담은 커

병원, 신입 채용해 인건비 절감
미숙련 간호사 늘어 업무 과중
열악한 환경→인력 부족 악순환



◆도제식 교육과 과다한 업무

지난달 서울아산병원의 한 신입 간호사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간호사 태움문화’에 대한 논란이 촉발됐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도제식 교육과 이에 따른 업무 과부하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지역 대학에서 한 해 배출되는 신입 간호사 수는 1천명 내외 수준이다. 이들은 대부분 3~4년제 학부를 졸업하고 국가자격시험을 거쳐 병원에 입사한다. 하지만 실전에 바로 투입되지 못하고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의 수습교육과정을 거친다. 한 상급대학병원의 간호부장은 “학교에서 2년 정도 실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시술환경 및 시스템이 병원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교육이 (별도로) 필요하다”면서 “교실에서는 ‘혈관 확보’라고 배운 용어가 현장에서는 ‘라인잡기’라는 전혀 다른 용어로 통용된다. 이를 알아듣는 신입 간호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신입 간호사들은 병원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업무 숙지에 4주 정도, 병동업무 실습에 8주 내외의 교육을 받는다. 이 기간 수백 개의 업무 체크 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병원에선 2~10년차 중참급 간호사로 하여금 신입 간호사를 1대 1로 맡아 가르치게 하는 도제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프리셉터(사수 간호사)가 기존 본인의 업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프리셉티(신입 간호사) 교육이라는 가욋일을 떠맡는 데 있다. 또 다른 대학병원의 15년차 간호사는 “경력직 간호사는 자기 일과는 별도로 교육 업무까지 봐야 한다”면서 “따라서 신입 간호사라는 존재는 경력직 간호사에게는 추가 업무와 같은 성가신 존재”라고 말했다.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인 ‘태움’이 자리잡게 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차 낮을수록 업무 부담 커

하지만 간호사의 높은 이직률을 단순히 태움이라는 강압적 교육문화 탓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고참 간호사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간호사들이 병원에 입사하자마자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교육과 병원현장의 괴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구지역에서만 한 해 2천명 이상의 학생이 실습을 받아야 하지만 실습기관은 양적·질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태다. 현재 경북대병원이 17개 대학과 실습 교류를 체결하고 있지만 이런 곳은 극히 드물다. 또 다른 대학병원 간호관계자는 “간호학과는 학문적 부분과 현장과의 괴리가 적지 않아 실습의 필요성이 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습)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실과 현장 간 괴리로 인해 간호사로 채용된 뒤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병원에서는 실습학생들에게 교육을 빙자해 아르바이트 업무를 요구하고 있다고도 폭로했다.

피라미드식 업무분담도 간호사의 조기 퇴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일일 3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야간근무를 한 달 평균 7~8일 해야 하지만 병원마다 고참 간호사에 대해 배려 아닌 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학병원의 경우 45세 이상이거나 임신한 간호사는 야간근무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족한 야간근무자는 연차가 낮은 간호사를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또한 출산, 육아휴직, 퇴직으로 인한 결원이 발생할 경우도 연차가 낮은 간호사에게 우선적으로 업무가 배당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간호사 김정미씨(45·가명)는 “간호사계는 간호과(부)장, 수간호사, 고참 간호사, 중참 간호사, 신입 간호사라는 계급으로 이뤄진 사회”라면서 “임신순번제나 퇴직순번제처럼 다른 사람이 볼 때 말도 되지 않는 일이 서슴없이 벌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병원은 연차 낮은 간호사 선호

따라서 의료관계자들은 간호사계의 문제를 단순히 ‘태움’이라는 조직문화로 좁혀 볼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인력, 열악한 근무환경, 실습부족에 따른 미숙련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실습도 받지 못한 신규 인력이 현장에 투입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 병원을 떠나면 결국 남아있는 사람들이 업무를 나눠 맡게 돼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15년차 간호사는 “간호사를 많이 채용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간호등급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간호사 업무량은 되레 늘었다”면서 “병원 측이 (간호사 확충에 따른)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호조무사를 줄이면서 간호사들이 조무사 업무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병원의 경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신입 간호사 위주의 채용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병원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경력직 간호사가 떠난 자리를 신입 간호사로 채우면서 전체 간호사 수는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선주(목포대 간호학과)·김진현(서울대 간호대학)·김윤미 교수(을지대 간호대학)연구팀이 대한간호학회 학술지에 발표한 전국 1천42개 병원의 2010년과 2015년 간호인력 비교자료에 따르면 새롭게 면허를 취득한 간호사 수의 변화는 병원 내 간호인력 증가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 간호사는 2009년 1만1천709명에서 2014년 1만5천411명으로 32% 증가했으나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간호사가 늘어난 병원은 199곳에 불과했다. 730개 병원은 인력 수준에 변화가 없었고, 113개 병원은 오히려 악화됐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간호사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병원들은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신입 간호사 교육이나 근무 형평성 등에서 병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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