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대구경북의 정신적 자산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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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6   |  발행일 2018-03-06 제30면   |  수정 2018-03-06
대구경북, 보수심장이라면
보수위기는 대구경북 위기
과거 훌륭했던 정신적 자산
되살려 保守를 補修하는 것
대구경북의 시대적 과제다
[화요진단] 대구경북의 정신적 자산

안동시 퇴계로 115. 안동시청사가 위치한 곳이다. 옛 안동향교 터이기도 하다. 안동시청사 입구 바닥에는 커다란 동판 하나가 묻혀있다. 이 동판에 새겨진 글은 ‘서상철 격문’이다. 조선말 보수적 유생이었던 서상철(徐相轍). 그는 이곳 안동향교에서 최초의 항일의병인 갑오의병의 첫 깃발을 들었다. 1894년 6월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 국권을 유린한 갑오변란에 맞선 거병이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안동향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발상지로 불린다.

‘저 원수들이 멸망할 날은 이 한 번의 의거에 있으니 이 격문이 도착하는 날, 팔도에 충의가 있는 사람들은 이번 달 25일 일제히 안동부 명륜당으로 오시어…’. 이 서상철 격문은 향후 51년간 전개될 항일투쟁의 서막이었다. 모인 의병의 수가 2천명에 이른다. 그런 까닭일까. 이후 안동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됐다. 상해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 국민회의 의장 일송 김동삼 같은 출중한 독립운동가가 뒤를 이었다. 안동 출신 독립유공자가 340여명이나 되니 당시 상황이 능히 짐작된다. 전국 시·군 평균의 10배가 넘는다. 안동의 충의(忠義)정신은 인근지역에도 영향을 끼쳐 대구경북은 독립유공자(2천여명)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지역이 된다. 서상철의 거병 정신을 이은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내년 100주년을 맞는다. 뜻깊은 해다. 안동은 물론 경북과 대구가 함께 경축하고 기념할 일을 찾아야 한다.

임정(臨政)을 시발로 한 대한민국 100년은 진정 질곡(桎梏)의 역사다. 일제강점기와 조국 광복, 남북 분단과 대한민국정부 수립,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 어느 하나도 순탄치 못했다. 그 역경의 시간을 질주해오면서도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낸 길목에는 항상 대구경북이 있었다. 대구경북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이자 역사를 이끌어온 힘의 원천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경외감과 존경심을 표했다. 며칠 전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다. 대통령은 ‘민족항쟁 본거지’ ‘새로움과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선비정신의 본거지’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 ‘낙동강 방어전선으로 대한민국을 지킨 보루’ ‘산업화의 본거지’라고 치켜세웠다. 역사적 사실이 그러하니 전혀 과장된 칭송이 아니다. 뿐만 아니다. 보수의 아성 대구경북이 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학생민주화 운동이 발원한 ‘민주주의의 뿌리’라 한 것은 새롭다. 2·28민주운동은 3·15의거와 4·19의 기폭제가 됐다.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린 첫 역사다. 촛불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문재인정부가 ‘그 까마득한 시작이 2·28민주운동이었다’고 고백했다. 정치적 수사(修辭)로만 들리지 않는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의롭고도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 왔으나 그런 역사를 때때로 잊어온 대구경북이 잠시나마 자긍심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역사의 징조를 미리 알고 몸과 마음을 바쳐온 고장. 대통령은 “존경을 바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도 같은 경외의 눈으로 대구경북을 바라보고 있을까.

흔히 대구경북을 보수의 심장이라 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통령의 발언을 대놓고 반박하면서 ‘보수 대구’ 논란이 일었지만, 대구경북이 보수 지역인 것은 세상이 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타 지역 보수후보들의 지지율이 10~20%를 맴돌 때 대구경북에서는 50~70%나 된다. 그래서 작금의 ‘보수의 위기’는 대구경북의 위기다. 보수를 향한 비판은 곧잘 대구경북을 향한 빈정거림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정신도 ‘꼰대’나 ‘꼴통’으로 덧칠된다. 보수의 위기는 가치의 상실에서 비롯됐다. 보수의 좋은 규범과 가치조차 오히려 진보에 빼앗겼다. 그래서 요즘 보수는 상대 흉이나 보고 실수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공격을 통해 혐오 유발을 자극하는 방식으로는 소수의 결속만 강화할 뿐이다. 보수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길은 아니다. 안보와 경제에 유능하고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보수의 강점 아니었던가. 그런 믿음이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살아있을까. 보수(保守)를 새롭게 보수(補修)하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라면, 그것의 절반은 대구경북의 몫이다. 잠자는 대구경북의 정신적 자산을 되살려 보수를 혁신하는 일이다.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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