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2·28민주운동과 18세 참정권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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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5   |  발행일 2018-03-05 제31면   |  수정 2018-03-05
[월요칼럼] 2·28민주운동과 18세 참정권

지난주 열린 제58주년 2·28민주운동 기념식은 예년과 견줘 무게감이 달랐다. 올해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정부 주관으로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대구지역 학생들이 주도한 2·28민주운동은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한 시위로 대구시민의 자부심이자 대구정신의 상징이다. 3·15의거와 4·19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민주주의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날의 함성 주인공이 경북고·대구고·경북여고 등 대구 8개 고교에서 참여한 1천200여 명의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독립운동·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고비마다 중심에 서서 변혁을 선도했다. 일제에 항거한 광주학생운동의 주체도 고등학생이었고,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 중에도 10대가 많았다. 3·1만세운동을 이끈 유관순 열사와 마산의거의 주역 김주열 열사도 당시 16세 학생이었다. 6·25전쟁 때 펜 대신 총을 잡은 2만7천여 명의 학도의용군 가운데 상당수가 중·고생이다. 4·19혁명도 알고 보면 대학생보다 고교생이 만든 혁명이다. 희생자 수만 보더라도 전체 186명 중 대학생이 22명인 반면 고교생은 36명이나 된다. 최근에는 촛불시위에도 참여해 침묵하던 기성세대를 광장으로 이끌어내는 자극제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에 10대 청소년이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세계 정치사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정치적 활동의 자유와 권한은 보잘것없다. 촛불혁명 이후 정권이 바뀌고 시민의식도 한 단계 성숙했으나 그들의 권리는 그대로다.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참정권조차 만 19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만 18세에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20대 국회에 11건이나 발의돼 있지만 국회 통과는 감감 무소식이다.

반대논리는 이렇다. 만 18세는 아직 덜 성숙해 정치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입시에 집중해야 할 학교가 정치이념에 물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보수정당은 진보적 성향이 강한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확대하면 선거에 불리하지 않을까 속보이는 계산도 한다. 그렇더라도 우리 사회의 변화와 청소년의 정치의식을 감안하면 지나친 기우(杞憂)다. 각종 법률 규정을 보더라도 만 18세면 이미 사회적으로 성인 대우를 받는 나이다. 민법상 혼인할 수 있고, 군에 입대할 수 있으며, 공무원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다. 더구나 정보화 사회에서 성장한 오늘날의 청소년은 지적 능력이나 정치의식이 과거보다 앞선다. ‘애들이 정치를 뭘 알겠느냐’는 기성세대의 권위의식도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어디 성인들의 정치적 자질과 판단능력이 청소년보다 뛰어나 선거 때마다 ‘묻지마’ 투표를 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찍어 국정농단을 자초했나. 나아가 선거연령 인하는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로 고령층에 비해 젊은 층의 정치적 의사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는 현실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기도 하다.

선진국·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18세 투표권은 세계적인 대세다. 선거제도를 가진 232개국 중 93%가 만 18세 이상에게 투표권을 주고 있다. OECD 34개국 중 19세 참정권 국가는 한국뿐이다. 일본도 2015년 18세로 낮췄고 대만도 지난해 20세에서 18세로 바꿨다. 한술 더 떠 오스트리아·아르헨티나·에콰도르·브라질 등은 만 16세면 투표가 가능하다.

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이기에 앞서 주권을 가진 현재의 주인공이다. 당연히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정치참여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 무엇보다 18세 청소년이 결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리지 않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만 18세 투표권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게다가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다음 대선부터는 투표일이 12월이 아닌 2~3월로 앞당겨진다. 대학 1학년도 상당수 투표를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당리당략을 떠나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해서라도 조속히 관련법을 처리해야 한다.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60만명의 새로운 젊은 유권자가 당당히 투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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