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최선, 선, 시행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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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5 07:54  |  수정 2018-03-05 07:54  |  발행일 2018-03-05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최선, 선, 시행착오

“선생님, 다른 사람들은 우리 아이가 착실한 모범생이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공부도 잘하고, 교우 관계도 좋고, 생활도 활달하게 잘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걱정입니다. 다 안다고 하면서 시험을 치면 꼭 한두 문제 틀립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건성으로 합니다. 아주 보기 싫을 정도로 지저분하지는 않지만 책상정리나 방청소도 대충 합니다. 항상 2%가 부족합니다. 대입에서 한 문제 실수로 불합격하는 사례가 많지 않습니까? 한 번 실수는 치명적입니다. 어떻게 하면 매사에 좀 더 철저해지도록 만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엄마의 욕심이 과한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정말 모범생 맞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면 오히려 자식 자랑한다고 핀잔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머님은 학창시절에 아이보다 더 착실하게 생활했습니까? 저는 그렇게 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좀 더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그 이상을 요구하면 아이가 부모를 속일 수 있습니다. 동양화에서 여백이 중요하듯이 아이에게도 여백의 시간을 허용해 주십시오. 아니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때론 부모가 앞장서서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도록 노력하십시오.” 상담 온 고2 학부모와 나눈 대화다.

어린 시절 누나가 집에서 머리를 깎아준 적이 있다. 머리를 다 깎았다며 목에 두른 보자기를 풀고 얼굴과 옷에 붙어있는 머리칼을 털어줬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다시 앉아 봐, 한 쪽이 조금 더 길어.” 누나는 양쪽 균형을 맞춘다며 여러 차례 이쪽저쪽에 가위질을 했다. 모양이 너무 이상하게 되어 결국은 이발소에 가서 빡빡 밀어야 했다. 살다보면 이와 유사한 일들을 수없이 경험한다. 조금 더 잘하고 더 완벽하게 하려다가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최선은 선의 적이다”라고 했다. ‘최선’은 ‘선’의 형제나 남매가 아니다. 최선에 도달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일을 그르쳐 선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와도 통한다. 어느 정도 견딜 만하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그냥 두라는 말이다.

실수와 실패의 경험 없이 바로 원하는 단계에 도달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된다. 최근 수능시험이 쉽게 출제되면서 한두 문제 틀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실수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일정 수준의 난이도를 가진 변별력 있는 문제가 출제되면 한두 문제 틀려도 치명상을 입지는 않는다. 교육 당국은 이런 사실을 참작해 난이도 조절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지나친 완벽주의는 오히려 실수를 유발시킬 수 있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다보면 생활에 활기와 재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실수를 했을 때 나무라지 말고 “수고했다. 더 노력하면 훨씬 좋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너는 어릴 때부터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지더라.” 이런 식으로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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