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미투’가 낯선 10대들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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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5 07:56  |  수정 2018-03-05 07:56  |  발행일 2018-03-05 제15면
[행복한 교육] ‘미투’가 낯선 10대들을 위한 안내서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미투’ 캠페인은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게 된 해시태그(#MeToo)를 다는 행동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배우 겸 가수인 앨리사 밀라노에 의해 대중화되었는데, 그녀는 여성들이 트위터에 여성혐오나 성폭행 등의 경험을 공개해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의 보편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이후 저명 인사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밝히며 이 해시태그를 사용했다. 최근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에 이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이제는 일상 대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 양성 평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할 10대 아이들에게는 왠지 낯설어 보이는 단어 미투(#MeToo). 이번 칼럼은 혐오를 넘어 존중의 가치를 찾아 나서는 10대들의 길을 안내하는 도서 목록이다. 재료는 지난 학기 우리 학교 아이들의 독서 목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책에서 골라 보았다.

첫 안내서는 호프 자런의 ‘랩 걸(Lab Girl)’이다. 작가 유시민이 TV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사랑하는 딸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고 소개해 유명해진 책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일찌감치 자연계열 여학생들 사이에서 ‘진로 설정에 가장 큰 도움과 용기를 준 책’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연구비를 타내기도 쉽지 않은 식물학, 이주민 가정 출신, 건강상의 어려움을 극복한 저자는 책을 통해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 삶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전문 분야에서 여성이 경력을 이어갈 때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유리천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코 과장하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일과 여성 과학자로서 견뎌야 하는 시선에 대해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이미 작가는 여러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여성이 겪어야 하는 편견과 차별의 벽을 허무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 다른 나무를 돕는 든든한 큰 나무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하고 있다.

이제 ‘소녀들을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를 표방한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정희진 외)를 만나 보자. 이 책에는 ‘페미니즘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은 선생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듯한 모범 답안도 들어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은 다르게 생각하는 연습”이라고 말한다. 여성학자 김고연주는 “페미니즘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과의 공감과 연대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도전”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페미니즘을 알아야 인간과 사회를, 혹은 나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최소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풍부해지고, 보이지 않던 부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청소년용으로 쓰인 책답게 학교 생활에서 경험했을 법한 사례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 관련지으며 읽으면 유익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 안내서는 홍재희의 ‘그건 혐오예요’다.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적인 삶을 성찰하는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을 만든 감독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6명의 동료 감독 이야기를 듣는다. 인터뷰에 참여한 감독들은 혐오의 주된 표적인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동물을 중심으로 어떤 말과 행동들이 혐오인지 말하고 있다. 또 그런 혐오가 어떤 배경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그 뿌리도 추적한다. 아울러 혐오를 끊을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여성이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 가는 불안정 노동자이기도 한 저자 역시 사회적 약자다. ‘그건 혐오예요’는 인터뷰 모음집이지만, 사회적 약자로서의 저자 자신의 삶도 묻어나 깊은 감동을 준다. 저자가 만난 감독 대부분은 각 현장에서 활발하게 발언하고 실천하는 활동가들이기에 학문적인 접근은 이뤄지지 않지만, 저자의 문제의식과 감독들의 문제의식이 부딪혀 혐오 문제에 관해 더 깊이 들어간다. 책과 함께 영화 ‘원더’를 같이 보는 걸 추천한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하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저 바라보면 된다.” 편견에 빠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원더’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그대로 작가와 감독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다.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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