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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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2   |  발행일 2018-03-02 제43면   |  수정 2018-03-02
“아름다운 풍광·제철 음식…휴식같은 영화 선물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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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에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하고 싶었다.” 임순례 감독은 그 진심을 ‘리틀 포레스트’에 오롯이 담았다. 일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 포레스트’는 홀로 고향에 내려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골의 삶을 보내는 혜원(김태리)과 고향에서 함께 자란 친구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의 이야기다. 4계절이 담긴 원작은 일본에서 ‘겨울과 봄’ ‘여름과 가을’ 2편으로 나뉘어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이를 한 편에 담아낸 임 감독은 “메인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다만,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우리 전통 음식으로 메뉴를 구성하고, 사람과의 관계 설정 등에 변화를 주었다”고 말했다. 임 감독 특유의 감수성과 절제된 연출력은 이번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화면 곳곳을 수놓은 대한민국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광과 산, 들, 텃밭에서 얻은 식재료로 마련된 제철 음식들의 향연은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색다르고 신선하다. 사회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문제의식을 늘 견지하면서도 약자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잊지 않았던 지금까지의 그의 영화적 접근법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임 감독은 “한 치의 여유 없이 바쁘게 휘몰아치고, 자극적인 것들로 가득한 살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가볍고 따뜻하게 전달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리틀 포레스트’는 진정한 치유와 힐링, 쉼의 의미를 되새기고 경험할 수 있는 아주 뜻깊은 시간이 될 듯하다.

▶마음과 몸이 함께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느꼈다면 성공이다.(웃음) 요즘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들이 센 캐릭터, 센 내용 위주다 보니 크기는 작지만 뭔가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이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와 편안함을 느꼈다면 만든 사람 입장에선 최고의 보상을 받은 셈이다.”

▶‘탈(脫)서울’ 후 경기도 양평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그곳 생활은 어떤가.

“개를 키우고 있는데 서울에선 마땅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 역시 서울 생활에 조금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이곳에 정착을 했는데 벌써 12년이 됐다. 지금은 너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전원생활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낭만적이고 평화로움을 느끼는 건 아니다. 우리 영화에서처럼 불편한 것도 신경 쓸 일도 많다. 마당에 핀 잡초도 뽑아야 하고, 보일러나 전기, 수도가 고장 나면 제때 기사가 올 수 없어 난감하고, 배달 음식은 당연히 기대도 할 수 없다. 생각하면 불편한 것투성이지만 그 불편함보다 자연으로부터 얻는 혜택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느껴지는 기분 좋은 상쾌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전원생활 하지만 모두 낭만적이진 않아
불편한 것들 투성이라도 자연혜택 더 커”

“日 원작과 다르게 사계절 한편으로 완성
고향 모인 20代 주인공, 관객공감에 초점
인위적인 것 배제…김태리 역할 잘 소화
전통 요리, 기억·추억 소환하는 매개역”

‘미투’타이밍, 韓영화 성평등센터 발족
“일하기 힘든 구조 개선·성평등 캠페인”



▶4계절을 두 편으로 나눠 개봉한 일본 영화와 달리 한 편으로 완성했다. 어느 때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일본처럼 두 편으로 나눠 만들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 영화를 보고 마니아가 된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지루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흥행성적도 일본과 한국 모두 좋지 않았다. 비슷한 장면이 너무 반복된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한국 관객들의 영화적 리듬이나 호흡을 생각해 볼 때 두 편으로 나눠서 만들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봤다. 물론 ‘신과 함께’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고 한국에서 1, 2편을 만들어서 성공한 케이스는 많지 않다. 그래서 욕심을 버렸다. 역설적으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라면 부담감으로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작은 규모였기에 우리가 계획한 대로 방향을 설정하고 짜임새 있게 콘티를 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촬영과 편집의 누수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꼭 사용할 것만 찍었다. 덕분에 제작비, 제작기간 모든 것이 차질 없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인가.

“만화 원작에서 출발은 하지만 이걸 한국의 관객들을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이상, 원작이 그렇게 중요한 의미는 아니었다. 이건 한국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20대 젊은이들이다. 고향에서 일하는 친구, 도시에서 일하다 농사를 짓는 친구, 시골집에 내려와서 자신의 시간을 갖는 친구들이 사실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농사를 짓거나 그 안에서 요리를 하는 모든 배우의 연기에 진정성이 묻어 있어야 했고, 관객들이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포인트를 줬다.”

▶이번 작품도 배우들의 조합과 싱크로율이 좋았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혜원 역을 놓고 누굴 캐스팅할지 고민이 많았을 듯하다. 김태리의 어떤 점이 혜원 역에 부합됐다고 보았나.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영화지만 인위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러다 보니 배우도 그런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태리씨는 자신을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있는 배우다. 어느 곳에서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도 중심을 끝까지 지키는 영리함이 있다. 항상 밝고, 함께 일하는 모든 스태프에게 긍정적인 밝은 에너지를 준다는 점도 굉장한 장점이었다. 영화가 청춘의 불안함과 고민을 그리고 있는데 배우까지 계속 우울해 보이면 보는 관객들도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태리씨는 그 점에서 모든 조건에 부합했다.”

▶매 장면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봤다면 임순례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신선했다.

“그런가.(웃음) 사실 내가 그림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좀 신경을 썼다. 인물들의 동선이 워낙 단조롭고 사건들이 많지 않아서 비주얼 쪽으로 포인트를 줬다. 그게 자연이 됐든, 배우가 됐든, 요리가 됐든, 그림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나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벌레 하나라도 살생을 막기 위해 촬영현장에서 모두가 노력을 기울였다고 들었다.

“우리 영화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이 죽는 게 싫었다. 이를 위해 극 중 혜원이 친구 몸에 붙은 애벌레를 떼어 2층 난간 밑으로 던지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1층 바닥에 모포를 깔아 놓아 벌레들이 받을 충격에 대비했고, 여름 밤 조명에 몰려든 날벌레까지 죽이지 않고 쫓는 방안을 강구했다. 사실 나는 그런 삶에 익숙하지만 대다수의 스태프는 좀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태프들도 차츰 인식이 바뀌면서 진심을 담아 실천을 하더라.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연 친화적 현장이었다.”

▶한국적인 정서를 가미하는 방식 중 하나로 우리의 전통적인 요리를 소개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음식은 그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했다. 절친인 은숙과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혜원이 만들었던 크렘 브륄레는 과거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엄마가 선물했던 음식이다. 또 심란한 마음으로 자신의 집을 찾은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내놓은 건 매운 떡볶이다. 이처럼 영화 속 음식은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닌, 기억과 추억들을 소환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즘 ‘미투’운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적절한 타이밍에 지난 1일 발족한 한국영화성평등센터의 대표를 맡았는데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나.

“여성영화인모임을 약 20년째 운영하고 있다. 감독, 배우, 마케팅, 스태프까지 회원은 300~400명 된다. 이를 통해 성폭력 신고나 상담 센터 등의 기능을 일부는 하고 있었는데, 2016년 일어났던 강남역 사건 이후로 한국의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면서 영화진흥위원회와 여성영화인모임이 함께 체계적으로 센터를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만들게 됐다. 한국의 성평등 지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런데 영화계는 더 열악하다. 이 기구를 통해 성관련 문제뿐 아니라 감독과 배우를 포함한 여성영화인들이 일하기 힘든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책을 연구하고, 성평등 이슈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하려 한다.”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KARA)’의 대표도 9년째 맡고 있을 만큼 동물을 사랑한다. 분명 이를 소재로 한 영화를 계획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 생각은 늘 하고 있지만 상업영화로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전에도 소, 개, 고양이 등과 찍어봤는데 소통이 안 되니 굉장히 어렵고 힘들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찍을 당시에는 구제역이 발병해 소의 이동이 불가능해 애를 먹었고, 소가 앉기를 기다리느라 전 스태프가 꼼짝없이 세 시간을 스탠바이한 적도 있다. 그래서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꼭 찍어야 한다’고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마음을 숙성시키고 있다.(웃음) 차기작은 지금 두 편을 검토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지금보다는 제작비가 많은 휴먼 드라마로 결정될 것 같다.”

▶한국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장르화·대형화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들의 설 자리는 줄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감독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감독으로 살아가는 게 참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한국에서 여성이 아닌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 상영과 배급이 수직계열화가 되면서 돈이 된다 싶은 큰 영화에만 집중 투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대적으로 중·저예산에서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여성 감독들의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는 관객들에게도 굉장한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투자 배급시스템을 개선하고, 공적인 자금을 더 많이 다양성 영화에 지원해주고, 관객도 그런 영화들을 보고 싶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실제로 많이 봐야 한다. 그런 식으로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국 영화의 질적인 성장과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그 점에서 임 감독의 역할과 책임이 더 무거워질 것 같다.

“예술이란 게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이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김현수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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