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팀 킴’과 ‘팀 코리아’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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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2   |  발행일 2018-03-02 제23면   |  수정 2018-03-02
[조정래 칼럼] ‘팀 킴’과 ‘팀 코리아’

‘어게인 2002’. 태극기 물결과 ‘붉은 악마’의 함성은 없었지만 감동의 파노라마는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염됐다. 평창 올림픽 17일간 열전의 드라마를 쓴 한국 컬링 여자대표팀. 한 게임 한 게임 세계 열강을 차례차례 격파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게 했다. 언니와 자매, 친구로 구성된 의성의 ‘마늘소녀들’이 연출한 한 편의 동화는 이제 평창의 상징과 신화로 남았다.

2018 평창 컬링은 2002 월드컵의 영광, ‘하나 된 열정’을 재현했다. 한반도를 온통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두 제전. 집단의 광기(狂氣)와 같은 가슴 벅찬 기운의 분출은 제어되지 않아도 좋을 집단 오르가슴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으로 성장하듯 마늘소녀들의 작은 몸짓이 몰고 온 감동의 돌풍. 환호와 작약, 그 근원(根源)과 근기(根氣)는 우리 민족의 원형질에서 발원한다. 그 원천(源泉)은 아마도 집단무의식에 침잠해 있는 신명과 신바람일 터다. 땀구멍이 없는 개의 발에 땀을 내게 하듯 혼신의 힘을 쏟아부으면 기적을 일구어내는 건 우리 특유의 성정(性情)이고 유별난 능력 아닐 것인가.

의성의 낭자군이 스톤으로 딜리버리한 협연과 협주. 외신에서 ‘팀 킴’으로 명명된 그들의 하모니는 열강의 틈바구니에 선 ‘팀 코리아’가 본받아야 할 롤모델이다. 휴전선에 의해 남북이 갈라지고, 이념의 지형은 시도 때도 없는 종북 논란으로 편을 가르고, 진영 논리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의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확대재생산하고, 자본에 의해 재단·고착된 사회적 계급은 상승과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렸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저력은 유효기간을 넘어 이미 폐기처분된 지 오래다. 퇴락과 퇴영의 시기, 새로운 국가발전 프레임을 모색해야 할 때 의성 컬링 소녀들의 거침없는 팀워크는 모범 답안을 펼쳐 보였다. 이념과 이데올로기는 국가의 생존과 안위 앞에서는 한낱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예선 전적 8승1패 1위 성적으로 준결승 진출이 확정된 순간, ‘의성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고 뭘 쓰냐’는 선배 언론인의 전화 조언을 들었을 때, ‘이미 할 만큼 했다. 더 이상 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지며 우리 모두는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던 거다. 마늘소녀들은 이번 평창올림픽 이전에만 해도 ‘얼음 위에서 무슨 걸레질을 해대고 있느냐’는 생뚱맞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생소했던 컬링을 5천만 국민 대부분에게 널리 알린 컬링 전도사들이다.

의성 마늘소녀들의 ‘팀 킴’의 환상적이고 조화로운 플레이는 스포츠를 대면하는 선수와 우리의 자세를 바꿔 놓았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공정성’ 논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팀이 보여준 ‘최악의 팀워크’와 고질적인 체육계의 파벌 악습,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 논란을 둘러싼 정치논리의 개입 등 적지 않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선전했고, 관중은 경기 자체를 즐겼다. 역대 겨울올림픽 최다 메달 수확은 금·은·동 등 종목과 색깔의 다양화로 이어졌다. 금 일색, 승자독식의 폐단을 날려보내는 계기도 됐다. 은·동메달을 따고도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거나 냉대를 받았던 지난날의 모습은 앞으로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평창은 한마디로 스포츠와 한국사회의 진화와 성장을 보여 준 삶의 현장이었다.

평창은 끝났지만 ‘영미~’ 신드롬은 남았다. 의성 마늘소녀들은 평창 최고의 ‘깜짝’ 스타로 떠올랐지만 알고 보면 ‘준비된’ 예비 스타였다. 경북의 작은 지방정부인 의성군의 선도적 투자도 찬사를 받을 만하다. 비인기 종목인 컬링의 경기장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선수 육성에 나선 것은 중앙정부 중심 국가주의 스포츠의 그늘을 되돌아보게 한다. 군 특례 혜택에서 연금 지급에 이르기까지 메달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법과 제도는 과연 계속돼야 마땅한가. 엘리트체육이든 생활체육이든 스포츠의 본질은 놀이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의성의 여고생들이 방과후 활동으로 즐기고 몰입한 끝에 세계 정상에 오른 것처럼. 의성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의 쾌거는 한국 스포츠는 물론 ‘팀 코리아’에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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