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평창에 분 ‘北風’, 약일까 독일까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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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6   |  발행일 2018-02-26 제30면   |  수정 2018-02-26
평창 올림픽은 끝났지만
한반도 평화협상은 시작
김여정·김영철이 휘저은
남남갈등 후유증 만회는
북핵대화 성과내야 가능
[송국건정치칼럼] 평창에 분 ‘北風’, 약일까 독일까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어제(25일) 끝났다. 우리 선수단의 선전 못지않게 남북접촉이 관심을 끈 올림픽이었다. 북한 선수단·응원단·예술단의 방남,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개·폐회식 참가 때문이다. 여기다 북한으로부터 핵위협을 받는 미국에서도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이 차례로 왔다. 이 바람에 남북한과 미국, 3자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과 수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막후 협상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극비리에 추진된 펜스-김여정 회동이 막판에 무산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데서도 그런 움직임들을 읽을 수 있다. 이제 우리 정부 입장에서 남은 과제는 평창 이후의 상황관리인데, 쉽지 않다.

펜스-김여정 회동이 불발된 뒤 미국은 북한 김정은 일가를 ‘악의 가족’(펜스)으로 지칭하면서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를 준비 중’(트럼프)이라고 경고를 날린다. 북한은 패럴림픽까지 끝난 뒤 재개될 예정인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정세격화 책동’(노동신문)이라고 규정하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제안한 남북정상회담의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북-미 대화를 주선하고 있지만 자칫 북-미 사이에 낀 처지가 돼 버릴 수도 있다. 북-미 대화의 통로가 될 걸로 기대했던 평창올림픽이 펜스-김여정 회동 무산으로 양측 사이에 감정의 골만 깊어진 까닭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상황변화가 없다면 평창 이전보다 한반도 정세가 더 꼬일 수도 있다. 현시점에서 추가적인 상황변화를 일으킬 인물은 내일(27일)까지 한국에 머물 김영철 통전부장이다.

북한 입장에선 ‘김영철 카드’가 절묘한 한 수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주동인물로 꼽히는 그를 ‘평화사절단’으로 포장해 파견함으로써 단숨에 한국사회를 흔들어버렸다. 국제사회 대북제재에 균열이 생겼고, 한미 사이에 간극을 만들었으며, 극심한 남-남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정부가 그런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대화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 다목적용으로 파견된 김영철 일행을 받아들였다. 어제 북한 대표단이 경의선 육로로 건너올 때는 통일대교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막히자 민통선 안의 군용교량으로 우회통과시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야당과 보수단체, 천안함 유족들이 격하게 반발하자 청와대가 앞장서고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국정원까지 줄줄이 나서서 ‘김영철 감싸기’를 했다. 김영철 일행이 돌아가는 내일까지 정부 모든 부처는 초비상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는 지금 상황관리 능력을 검증받을 시험대에 섰다. 김여정-김영철 방문이 올림픽 종료와 함께 그저 일과성에 그치면 우리 사회가 잃는 부분이 너무 많다. 남-남 갈등의 후유증은 또 치유될 수 있지만 국제사회의 북핵 공조에서 한국이 외톨이가 돼 버리는 문제는 심각하다. 올림픽 동안 한반도 문제 해결의 운전석에 앉았던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자리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수준의 성과를 내야 한다. 김여정 일행에 대한 저자세 과잉환대 지적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데 이어, 김영철 방남의 부정적 효과도 감당하고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한 반대급부가 필요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특사’ 성격이 없지 않은 김영철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건 해야 한다. 가령 핵과 미사일 개발 잠정중단을 전제로 남북교류 재개를 제안하거나, 천안함 폭침 인정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면 그 자체로 성과가 된다. 어떤 방식이든 올림픽이 끝났다고 빈손 털고 끝낼 일은 아니다.

송국건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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