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제1회 구상詩문학상 수상 ‘유에서 유’의 詩人 오은

  • 유승진 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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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4   |  발행일 2018-02-24 제22면   |  수정 2018-02-24
“말놀이는 내게 지문 같아…내 몸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20180224
오은 시인은 “‘혼자’와 ‘함께’라는 감각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앞으로도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며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지난해 영남일보는 창간 72주년을 맞아 한국시단(韓國詩壇)의 거목 구상(具常, 1919~2004) 시인의 문학세계와 정신을 기리기 위해 구상詩문학상을 제정, 공모했다. 그리고 제1회 구상詩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오은 시인의 ‘유에서 유’를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오은의 시는 대중적 언어가 아님에도 독자들의 호응이 적지 않고 독특한 시법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내가 ‘일요일에만 시 쓰는 시인’이 된 것은
직장생활로 평일엔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
토요일을 징검다리 삼아 ‘시인 오은’변신

재수때 답답함 줄글로 적은 게 詩作 첫걸음
대학 합격, 다음날 등단 ‘인생 최고의 이틀’
서울대·카이스트서 비문학전공 詩作에 도움

공연 기획과 음악+문학 콘텐츠 기획자 활동
나를 잃지않으면서 시대 외면않는 시 쓰고파
올 하반기 ‘사람’ 연작시 묶은 시집 낼 계획



▶제1회 구상詩문학상 수상자가 된 소감은.

“일단 매우 기쁘다. 출장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받고 한동안 얼떨떨했다. 제1회 수상자라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기도 했고, 앞으로 문학상에 일종의 기준이 된 것도 같아 책임감도 느낀다.”

▶구상 선생님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나.

“문학 시간에 ‘초토의 시’를 배운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구상 선생님의 ‘홀로와 더불어’라는 시집을 참 좋아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홀로와 더불어’라는 시는 내가 시를 쓸 수 있게 해준 동력을 떠올리게 해줬다. ‘혼자’와 ‘함께’라는 감각이 없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시도 바로 ‘홀로와 더불어’였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나왔다. 문학인으로서 좀 뜻밖의 학벌이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다음날 등단 소식도 들었다. 내 인생 최고의 이틀이었다. 학벌이 내 문학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없지만, 시인으로서 주목을 받는 요소가 됐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첫 시집을 낸 2009년까지 “쟤가 계속 시를 쓸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각각 사회학과 문화기술을 전공했는데, 문학과 다소 거리가 있는 전공이어서 오히려 도움이 됐다. 생각과 상상의 외연이 넓어졌다.”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재수를 했다. 원래 소음이 조금 있어야 집중을 잘하는 편인데, 부모님이 보기에 집중을 못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때부터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샤프 굴러가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견딜 수 없었다. 그 답답함을 줄글로 적어 봤는데, 형이 그것을 읽고 시라고 했다. 내가 적은 글들을 형이 컴퓨터에 옮겨 출력해 문예지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시인이라는 직업 말고 따로 직업이 있다고 들었는데.

“현재 파스텔뮤직과 응컴퍼니에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파스텔뮤직에서는 주로 음반 및 공연을 기획하고 소속 뮤지션의 음악적 방향성을 잡는 작업을 하고 있다. 크고 작은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파스텔뮤직이 음악에 집중된 일이라면, 응컴퍼니에서는 음악과 문학을 결합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 공간에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작년에 코엑스, 한빛광장, 한강 등의 공간에서 구조물을 만들고 시인과 뮤지션이 함께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서점 프로젝트 ‘이씀’활동도 하고 있다. 좋은 책을 함께 읽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다. 스토리 펀딩 ‘죽이는 글쓰기’활동도 하고 있는데, 매달 20명 정도 글쓰는 분들의 멘토를 하고 있다.”

▶일요일에 시를 쓰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특별히 일요일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2012년 이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인 정체성이 몸에 새겨진 뒤로 평일에는 시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야근이 많기도 했지만 저녁에 시간이 나도 오늘 못다 한 일, 내일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느라 도무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직장인 오은에서 시인 오은으로 돌아오는 일이 불가능했던 셈이다. 토요일을 징검다리 삼아 시인 오은으로 변신하고 일요일에는 온종일 자리에 앉아 있으려고 했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결혼식장에도 안갔다. 일요일에는 시와 칼럼, 에세이 등을 쓰기 위해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한다.”

▶구상詩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역동적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말놀이를 한다고 평가했다.

“‘말놀이’라는 게 이제는 내게 그림자나 지문같은 것이 됐다. 내 몸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 셈이다. 내 시에는 나이 어린 화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어른이 하면 ‘꼰대’같은 말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어린아이가 하면 ‘맹랑함’으로 여겨진다. 조숙한 어린아이가 사회와 기성세대를 향해 놓는 일침같은 것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시, 지금 여기를 응시하는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쓸 때 영감을 얻는 방법이 있다면.

“영감이라는 말은 다소 허황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일필휘지로 적고 만족했던 적은 없었다. 내게는 일상 여기저기서 자리하고 있는 불씨들을 발견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 때문에 산책도 많이 한다. 동네처럼 익숙한 공간이라 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그 미묘한 차이에서 생기를 느낀다.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보는 ‘다르게 보는’ 훈련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책이나 존경하는 작가가 있다면.

“노벨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를 존경한다. ‘끝과 시작’이라는 시선집은 읽을 때마다 놀란다. 시선집 특성상 뒤로 갈수록 나이가 들었을 때 쓴 시들이 실려 있는데 그 시들이, 아니 그 시들조차 실로 팽팽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이고 그 익숙함은 시적 긴장을 늦추기도 할 텐데, 죽을 때까지 시대를 응시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유지했다는 점이 경이적이다. 본받고 싶은 시인이다.”

▶앞으로 각오와 활동계획을 말해달라.

“나는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다. 15년 넘게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은 내게 시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꾸준함만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날들이다. 백지는 아무리 대해도 좀체 만만해지지 않는다. 그 막막함이 계속해서 쓰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시를 쓰겠다. 올해 하반기에는 사람에 대해 쓴 연작시들을 묶어 ‘사람’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낼 것이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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