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6·13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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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3   |  발행일 2018-02-23 제23면   |  수정 2018-02-23
[조정래 칼럼] 6·13

대한민국은 목하 얼음축제 중이다. 빙상 팀추월과 의성의 컬링 낭자군은 발군의 합주(合走)와 협연(協演) 실력을 보여주며 갈가리 찢긴 한국사회에 한가닥 희망의 불빛을 비춘다. 축제도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평창 얼음 꽃놀음에 한때나마 시름을 내려놓고 유종의 환호작약을 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인디언 서머’는 짧고 잔치는 언제든 끝나게 마련. 다소 섣부른 진단일 테지만 ‘지금 평창’은 성공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마냥 정신줄을 놓고 있을 순 없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 평창 이후’는 실로 엄혹하다. 한반도를 통째로 짓누르고 있는 북핵과 안보 위기 등은 절체절명의 실험대다. 6·13 지방선거는 한바탕 꿈에서 퍼뜩 깨어나 냉정하게 대면해야 할 지방의 축제다.

이제 평창에 매몰됐던 지방선거를 땅 위로 끌어올려야 할 때다. 6·13까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는데 출마예상자들의 발걸음만 부산할 뿐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유권자의 이러한 무관심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라 해도 큰일이다. 이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는 선거가 판박이로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각축을 벌였던 대선주자들이 전면에 나서 리턴 매치를 벌이는 양상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적 의제는 실종되고 중앙의 의제와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적폐청산과 정권심판 프레임이 충돌하고 개헌이 정쟁으로 추락했다. 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다. 중앙 정치의 축소판이다.

이번 지방선거, 오는 ‘6·13’은 달라져야 한다. 지방의 정치가 중앙 정치의 식민지로 안존(安存)해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미래가 없다. 지방분권 개헌을 하자는 마당에 아직도 보스에 줄대기 하는 해바라기 정치인들이 횡행하는 건 시대착오다. 이대로 가다가는 과거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또 하나의 지방선거, 여야의 대리전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고질적인 여야 진영 논리와 적대적 공존은 더 이상 공존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시대 퇴행적이고 위험하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주역은 정치권에는 없다. 지방선거의 혁신을 정치가들에게 기대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니 유권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지방의 선택은 지방적이어야 한다. 당연한 논리지만 지금까지 지방은 인물과 정책보다는 진영과 구도, 프레임에 갇혀 왔다. 그래서 지방이 대통령을 걱정하느라 애면글면하면서 지역 간 대결이 속출했고, 보스나 계파의 이익에 충성하려다 보니 평가와 심판에 가까운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 경향을 보여 왔다. 지방정부의 수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지방선거 또한 대선과 마찬가지로 지방의 비전과 지방의 리더십에 방점을 찍는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에 의해 좌우돼야 한다. 정책과 인물 중심의 지방선거, 그 패러다임 전환은 지방분권 성공 여부를 가를 관건이기도 하다.

지방의 소멸, 통합공항 문제, 취수원 이전 등 지방의 이슈만도 차고 넘친다. 중앙집권 세력과 이에 기생하거나 조종당하는 토호들의 각축전이 돼 온 지방선거는 이제 끝나야 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최근 영남 일대에서 ‘친홍’계 운운하면서 지방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은 나를 이용해서 자기의 사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에 불과하다”며 “지금부터라도 자기 경쟁력으로 선거에 임하라"고 경고했다. 모처럼 입바른 소리를 했고, 참으로 시의적절한 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천헌금이 난무하는 ‘어둠의 시간(DARKEST HOUR)’을 종식시키고, 나아가 지방분권 개헌을 외면하는 반분권적 국회의원들을 징치하자. 지방의 시대는 그냥 열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수준은 세계 톱 클래스다. 민주화 역시 선진국 반열에 들었지만 모범적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2% 부족하다. 그런데 민주화의 한 척도라 할 수 있는 분권화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수도권 일극 중앙집권주의와 식민지 비수도권 사이의 불평등이 성숙한 민주국가로 발전하는 데 최대 걸림돌이다. 오는 6·13은 27년째를 맞는 지방자치가 중앙정부의 식민지에서 비로소 해방되는 날, 중앙집권 세력과 탈식민 분권 세력 사이의 거대한 격전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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