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커피 대중화 그늘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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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2   |  발행일 2018-02-22 제31면   |  수정 2018-02-22

우리나라 커피 역사를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사람이 고종 황제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 고종은 러시아 초대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손탁 여사가 대접한 커피를 맛보고 그 향기에 푹 빠졌다. 그는 궁중의 다례의식에까지 커피를 사용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커피마니아 1호였다. 하지만 고종이 커피를 접하기 10여 년 전에 이미 민간에서는 커피가 제법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빌 로웰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 그는 1884년 1월 조선의 고위관리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으로 간 사실을 전하면서 “우리는 다시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고 기록했다.

일반인들이 커피를 즐기게 된 것은 1950년 이후 미군의 인스턴트 커피가 들어오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수입제한 품목이었던 커피는 1968년 정부가 커피 생산회사 동서커피의 설립을 허가하면서 대중의 대표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그 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커피 수입 자율화가 발표되자 1988년 12월 서울 압구정동에 첫 원두커피 전문점이 등장했다. 1999년에는 서울 이화여대 앞에 한국 최초의 스타벅스가 들어서 본격적인 테이크아웃 커피문화가 시작됐다.

빛깔과 맛이 탕약과 비슷한 데다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양탕국’으로 불렸던 커피는 불과 130년 남짓 만에 국민음료로 자리를 굳혔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무려 11조7천397억5천만원으로 처음 10조원을 넘어섰다. 국민 전체가 1년 동안 마신 커피를 잔 수로 따지면 약 265억잔에 달한다. 우리나라 인구 5천177만명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512잔을 마신 셈이다.

국민의 남다른 커피 사랑 때문에 새로운 골칫거리도 생겼다. 커피전문점과 테이크아웃 문화가 확산되면서 거리마다 일회용 컵이 넘쳐난다. 쓰레기통은 물론이고 버스 승강장, 공원 벤치, 대로변 등 길거리 곳곳을 점령해 도시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갖가지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환경부의 통계를 보면 연간 일회용 컵 사용량은 260억개로 하루 평균 7천만개가 소비된다. 더 이상 방치하면 삼천리 금수강산이 머잖아 일회용 컵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 2008년 폐지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를 부활하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하든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소비자들도 커피 맛만 즐기고 양심은 버리는 얌체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았으면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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