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차세대 섬유인들에게 바란다

  • 이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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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2   |  발행일 2018-02-22 제30면   |  수정 2018-02-22
[취재수첩] 차세대 섬유인들에게 바란다

“대구 섬유업 2세 경영인이요? 의외로 많습니다. 실력과 내공도 상당해서 물려받은 기업을 건실하게 잘 이끌어나가고 있죠.”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많다던 차세대 섬유 경영인들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그들이 마치 겹겹으로 싸인 구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구 섬유·패션 세대교체 바람’ 시리즈 기사를 준비하면서 관련 조합을 통해 2세 경영 업체 서너 곳을 소개받았다. 이들을 통해 어려움에 봉착한 지역 섬유패션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재도약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겠다는 의도였다. 신진 패션디자이너와 함께 섬유업체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경영인 두세 명을 섭외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할 생각이었다.

인터뷰 섭외를 위해 전화를 했다. “그럴 만한 곳이 못됩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다른 업체들이 더 뛰어날 겁니다.” 이런 대답만 돌아왔다.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는 거듭된 요청에도 반응은 한결 같았다. 그나마 언론을 통해 몇차례 소개됐던 업체 한 곳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정말 내세울 만한 업체가 못되거나 그저 그런 곳들이었을까. 섭외 요청을 했던 기업들은 모두 국내외 전시회에 수차례 참가하고, 일찍이 수출길을 열어 해외로 진출한 대구의 손꼽히는 섬유 강소기업들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업계 관계자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더니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1세대 어른들이 계시다보니 쉽게 나서지 못하는 데다, 업계 내에서도 좋든 싫든 목소리를 내기 꺼려하는 분위기가 깔려있기 때문이죠. 특히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대구는 그런 게 더 심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앞장서 나서는 사람은 설친다는 말을 듣고, 나서기보다 뒤로 물러서 있는 것을 미덕이라 여긴다. 딱히 고쳐야 할 필요도 없고, 고치려면 참 힘든 폐쇄적인 사고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묵묵히 잘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쉴 새 없이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제조업의 특성상 정말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양산업이라고까지 치부되는 섬유산업의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젊은 인재들에게 섬유산업의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재도약의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로 인해 섬유산업에 대한 관심이 회복되고, 새로운 부활의 날갯짓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좁은 대구 안에서 먼저 나서선 안된다는 생각보다, 대구니까 함께 잘되길 빌어주고 덩달아 힘을 얻자는 생각을 가져야 할 때다.

수년 전부터 경기도에서는 섬유 2세 경영인들의 모임인 ‘차세대리더스교류회’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경영 성과나 애로사항 등을 공유하고, 머리를 맞대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알리며 성장을 꾀한다. 경기도내 섬유업체와 종사자수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대구가 지켜왔던 국내 섬유산업 1위 자리는 지금 위태롭다.

이연정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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