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 파괴하고 경관 망치고…‘친환경’ 이름으로 야산 점령한 패널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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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2 07:38  |  수정 2018-02-22 07:39  |  발행일 2018-02-22 제8면
‘우후죽순’ 태양광발전 자연훼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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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한 야산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효율성을 이유로 야산 남쪽 사면에 설치돼 있다. 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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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놀던 내 고향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 추운 겨울엔 햇볕 좋은 동산 기슭에서 친구들과 뒹굴며 놀고 그랬는데, 그곳을 시커먼 태양광 패널이 덮고 있어서 고향이 변해 버린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낯설어진 고향입니다.”


햇빛 잘 드는 남쪽 야산에 설치
산지 난개발과 전자파 등 우려
적법 절차 거쳐 주민 반대 한계


설을 맞아 고향인 상주 사벌면을 찾은 김모씨(56·서울)는 고향 마을의 나지막한 야산이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 있어서 크게 실망했다. 선연한 추억이 서려 있는 동산의 남쪽 사면이 시커먼 물체로 덮여 있는 게 마치 어린 시절 한 토막을 까맣게 지워 놓은 자국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김씨뿐만 아니라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이들은 마을 안팎에 들어선 태양광발전소 때문에 고향이 점점 낯선 모습으로 변해가는 데 대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태양광발전소는 특성상 넓은 면적을 차지해야 한다. 때문에 비교적 값이 싼 야산에 주로 설치되고 있다. 또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 사면이 주 타깃이다. 겨울에 햇볕이 잘 들고, 차가운 북풍이 미치지 않는 야산의 남쪽 사면은 과거 마을 어린이들의 ‘겨울 놀이터’였다. 농촌 아이들은 그 기슭에서 뒹굴고 자랐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고향을 찾을 때마다 옛 추억을 떠올린다. 이 때문에 그 자리에 들어선 태양광 패널은 고향을 찾는 이들에게 왠지 모를 정서적 상실감을 주고 있다.

태양광발전소는 또 사업자와 마을 주민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마을에 대규모 발전소가 들어설 경우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폭우 때 홍수 피해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전량이 많은 곳에선 주민들이 전자파가 미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고 있다.

상주 함창읍 한 마을에선 태양광발전소 설치를 놓고 주민들이 서명운동 등 집단 반발에 나섰다. 업자가 이 마을 출신인 데다 주민과 합의를 해 더 이상의 반대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규모 태양광발전소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게 주민들의 속마음이다. 이 마을 한 주민은 “처음엔 반대를 했지만 적법 절차를 거쳐서 설치되는 태양광발전소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일도 아니어서 발전소 설치를 수용하는 쪽으로 기운 것 같다”며 “공해 없는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주민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광발전소에 대한 지역 주민의 불만은 그것이 미관을 해치고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등 불편을 주는 데서 비롯된다. 또 야산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집중 호우나 폭풍 등 기상이변 발생 때 재해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주민 반대에도 설치가 늘고 있는 것은 태양광발전소가 안정적 소득원이라는 인식이 작용한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농촌에서 안정적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 드문 데다 태양광 사업은 특별한 기술 없이도 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뛰어들고 있다. 태양광발전소 컨설팅을 하고 있는 J씨(66)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 시설 용량 20㎾를 설치할 경우 연간 기대 소득이 500여만원에 이른다. 시설 설치비는 4천500만~5천만원 선이다.

“발전 시설을 설치하려면 부지 정리를 해야 하고 지형에 따라 설치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총 설치비가 얼마 정도 든다고 일괄적으로 말할 순 없습니다. 발전량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몇 ㎡에서 얼마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가를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부 설비업자들이 이같은 사정을 감추고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과도한 추가비용 부담과 저품질 자재 사용 등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J씨에 따르면 태양광발전소 입지는 남쪽 방향의 비탈면이 가장 좋다. 게다가 고압선로가 설치돼 있으며 도로가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 마을 인근 경사도 나지막한 야산이 선호되는 이유다. 그는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산을 선호하는데 효율·안전성을 따져야 한다”며 “태양광 발전이 무공해 에너지 생산에 목적이 있는 만큼 산지 난개발 등은 지자체 차원에서 예방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주=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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