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의 정치풍경] 북핵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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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5   |  발행일 2018-02-15 제26면   |  수정 2018-02-15
북과 대화 거부하는 트럼프
일방적이며 안하무인이라
비난하는 사람들은
핵무기문제로 세번 속인 北
그 흑역사 모르기 때문일 것
[차명진의 정치풍경] 북핵의 흑역사

북은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세계를 세 번 속였습니다. 1989년 9월15일 프랑스의 상업위성이 북 영변의 비밀 핵시설을 공개했습니다. 노태우정부가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약속하자 북은 NPT(핵확산방지조약) 가입과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수용합니다. IAEA가 실제 활동을 개시하자 북이 방해했고 NPT도 탈퇴했습니다. 이것이 북의 첫 번째 약속 위반입니다. 1994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의 폭격을 시도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반대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김일성-김영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대화가 추진되었습니다. 그해 10월 제네바 선언을 통해 북의 핵사찰 수용과 서방의 경수로 지원, 매달 50t의 중유 제공이 결의됐습니다. 그러나 북은 밑으로 또 다른 핵개발을 추진했고 2002년 12월 미 국무부가 북의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폭로했습니다. 북은 또다시 IAEA 사찰관을 내쫓았고 NPT를 탈퇴했습니다. 북이 두 번째로 세계를 속였습니다.

중국이 6자회담을 추진했고 2005년 9월19일 북이 다시 한 번 NTP에 가입한다는 공동성명이 채택되었습니다. 다음 날 미국이 북한의 위조달러와 가짜담배 제조, 밀수자금 세탁을 이유로 방코델타 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킵니다. 반발한 북은 2006년 1월 함북 풍계리에서 1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6자회담은 계속됐고 마침내 6월27일 영변 원자로가 폭파됩니다. 그러나 북은 또다시 세계를 속입니다. 2008년 11월 북은 IAEA의 시료 채취를 거부했고 6자회담도 중단됐습니다. 2009년 취임한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인해 북핵 개발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자동차가 되었습니다.

북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트럼프를 일방적이고 안하무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북핵의 흑역사를 모르거나 북의 편에 서있는 사람입니다. 핵무기 문제로 세계를 세 번 속인 나라는 대화가 가능한 정상국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또다시 핵무기 양보를 천명하더라도 세상에 공개할 껍데기와 별도로 어딘가에 진짜 핵무기를 숨겨 놓고 있을지 모릅니다. 시사만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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